[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5) 인기는 TV를 타고

입력 2015-11-16 10:50 수정 2016-01-05 10:02
형사 콜롬보'의 DVD 표지.

리메이크영화의 핵심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에 있다. 원작과 너무 밀착해있으면 리메이크의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굳이 리메이크할 이유가 없다.

영국 감독 가이 리치가 1960년대의 히트 TV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나폴레옹 솔로-엉클에서 온 사나이(Man from UNCLE)-’는 그런 뜻에서 리메이크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원작과 지나치게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전혀 다른 영화라고 할 정도로.

거기에는 이 TV시리즈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던 007 제임스 본드 영화보다 훨씬 더 가볍고 좀 더 만화 같았던 오리지널과 딴판으로 지나치게 정색하고 진지한 스파이물로 접근한 구성상의 문제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0011 나폴레옹 솔로역 헨리 캐빌이 느끼한 주걱턱 로버트 본이 아니고, 일리야 쿠리야킨 역의 아미 해머 역시 금발머리 찰랑대던 데이비드 맥컬럼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재능 있다는 평을 듣는 가이 리치는 영화의 시대 배경을 원작 TV 시리즈가 탄생한 1960년대로 설정했다. 시대는 흘렀어도 영화만은 그 옛날의 멋과 맛을 살리려는 나름대로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런 만큼 여배우들의 화장이나 의상도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에 나온 오드리 헵번처럼 꾸미는가 하면 60년대의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풍경을 충실하게 재현했고, 음악도 60년대 풍으로 도배를 하는 등 1960년대 분위기를 살리려 안간힘을 쓴 게 역력히 보였다. 하지만 정작 두 주인공이 그 같은 노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론 배우 개인의 매력에 관한 한 신세대 슈퍼맨으로 유명한 캐빌이나 신세대 론 레인저로 이름을 떨친 해머 모두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연기한 나롤레옹 솔로와 일리야 쿠리야킨은 아예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였다. 솔로와 쿠리야킨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모를까, 오리지널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절대로 친숙해질 수 없고 동일시할 수 없는 낯선 인물들.

가이 리치 감독은 속편을 염두에 둔 듯 솔로와 쿠리야킨이 소속되는 조직 UNCLE의 수장인 웨이벌리 국장역(TV 오리지널에서는 베테랑 배우 리오 G 캐롤이 맡았던)에 영국의 유명 스타 휴 그랜트를 내세워 영화 말미를 장식하게 했지만 앞으로 나올 속편도 이 영화 수준이라면 만들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듯 싶다. 나폴레옹 솔로에 향수를 갖고 있는 관객이라면 여지없이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TV시리즈 ‘0011 나폴레옹 솔로’는 그때까지 스타 대접을 받기는커녕 겨우 이름 정도나 알린 타이틀 롤 로버트 본과 일리야 역 데이비드 맥컬럼이 이후 스크린에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출세작 노릇을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캐빌과 해머에게도 그들과 유사한 기회를 제공할까. 아무래도 또 다른 기연(奇緣)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리우드에는 본이나 맥컬럼처럼 그저 그런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별 볼 일 없이 지내다가 TV 시리즈 출연을 계기로 브라운관은 물론 스크린에서도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적지 않다. 말하자면 특정 배우들의 경우 TV가 톱스타로 올라서기 위한 훌륭한 인기의 도약대가 됐다는 얘기다.

우선 아주 잘 알려진 스타부터 보자. 스티브 맥퀸. 그는 같은 또래 폴 뉴먼 주연의 ‘상처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s Me, 1956)'에 이름도 안 나오는 단역으로 영화 데뷔한 뒤 영화와 TV에서 사소한 역할을 맡거나 간혹 싸구려 영화의 주연을 따내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출세작이 된 것은 1958년에 첫 방영된 CBS의 서부극 ’바운티 헌터(Wanted: Dead or Alive)'였다.

맥퀸이 특이하게도 총신을 짧게 자른 윈체스터 소총을 권총처럼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번개처럼 빠른 총 솜씨를 보여줌으로써 국내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이 서부극은 미국에서 61년까지 방영됐는데 이 TV 시리즈를 통해 맥퀸은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마침내 최고의 톱스타가 됐다.

또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임스 가너도 TV 서부극이 출세의 발판이 됐다. 두 사람이 각각 카우보이와 도박사로 나온 ‘로하이드(1959~1965)’와 ‘매버릭(1957~1962)’. 재미있는 것은 매버릭의 경우 영국 배우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가 되기 전까지 간판작품이었던 TV 시리즈 ‘세인트’ 이전에 미국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는 점.

인기 높아진 가너가 매버릭 역에서 떠나자 제작진은 그의 사촌이 영국에 있었다는 설정 하에 사촌을 미국으로 불러들인다는 계획을 냈다(1960~61 방영). 이에 따라 그 역할에 먼저 도전한 것이 영국 배우 숀 코너리였다. 그러나 코너리는 이 역할을 따내려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테스트에서 떨어졌고 결국 무어에게 역할이 돌아갔다. 제임스 본드 역할로는 코너리가 선임, 무어가 후임이었지만 여기서는 무어가 승리(?)한 셈.

무어가 1973년 제3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되기 전 미스터리 탐정물인 ‘세인트’로 1962년부터 무려 69년까지 세계의 안방극장을 주름잡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 프로는 영국 ITV 작품이지만 처음부터 미국 관객을 겨냥해 만들어졌으며 전 세계에서 방영돼 무어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다). 이처럼 서부극 아닌 미스터리 또는 형사물을 통해 톱스타로 발돋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마초 대장’ 또는 남성적 매력의 대명사인 리 마빈과 버트 레이놀즈다. 마빈은 배우 초창기 때 악역 조연 전문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역할을 보자면 오토바이 폭주족 말론 브란도의 상대 악당 폭주족으로 나왔던 ‘난폭자(The Wild One, 1951)’와 한 팔을 못 쓰는 참전용사 스펜서 트레이시를 못살게 굴던 악당으로 나왔던 ‘Bad Day at Black Rock(1955)' 등이 있다.

그러던 마빈은 1957년부터 60년까지 'M Squad'라는 TV 수사물에서 형사반장역을 하면서 스타 탄생의 발판을 만들었다. 또 레이놀즈 역시 이런 저런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다 1966년 ’Hawk'라는 TV 형사물에서 존 호크 형사역을 맡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물론 결정적인 인기의 기폭제가 된 건 1972년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실린 누드사진이었지만.

그렇다면 TV가 만든 최고의 인기스타는 누구일까? 단연 피터 포크다. 후줄근한 바바리코트의 꾀죄죄한 형사 콜롬보. 사실 포크는 콜롬보가 되기 전 악역부터 코미디까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훌륭한 배우였다. 그러나 스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던 포크가 1968년 출연해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한 TV영화가 콜롬보였다.

미국에는 TV영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있다. TV 드라마라기보다 극장용 영화에 가까운 것이지만 극장 상영용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나 제작방식, 러닝타임은 극장용 영화와 흡사하다. 게스트 출연진도 대체로 상당히 거물급이 등장한다. 하지만 물론 극장용 영화보다는 제작비가 적게 든다. 콜롬보는 그런 TV영화였다.

포크가 처음 콜롬보로 나왔던 90분짜리 파일럿 프로그램 ‘처방은 살인(Prescription Murder)'이 인기를 끌자 NBC는 이를 고정 방송하기로 하고 1971년 당시 25세의 신예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연출을 맡겨 시리즈 첫 회를 시작한 뒤 78년까지 방영했다.

형사 콜롬보는 포크를 불멸의 스타로 만들었다, 미국의 TV전문지 TV 가이드가 ’역대 최고의 TV스타 50인‘을 선정하면서 21위에 올렸을 만큼. 포크는 형사 콜롬보를 계기로 주로 조연 전문이었던 스크린에서도 뚜렷한 주연으로 신분상승하면서 톱스타 대열에 올랐다.

앞으로도 누가, 어떤 TV 프로그램을 통해 대스타가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