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테러를 계기로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 관련법에 대한 제·개정 논의가 다시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우리나라도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며 한국인 가운데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한 사례까지 알려지면서 테러방지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19대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우선 직접적으로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한 법안이 5건이 있고, 이밖에도 감청관련 법안, 정보기관이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등 테러 방지와 관련된 법안들도 여야간 입장차로 본격적인 입법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국회에서 먼지만 쌓여왔다.
이번 파리 테러를 계기로 이제 임기가 6개월여 남은 19대 국회 회기중에 처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테러방지법 19대 국회만 5건 발의…처리는 0건 = 15일 국회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테러방지와 직접 관련된 법안은 모두 5건이다.
크게 대응범죄는 테러와 사이버테러로 나뉘는데 모두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 등 10명이 지난 2013년 3월 27일 공동발의한 '국가대테러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안'이고, 이병석 의원등 73명이 올해 2월16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이노근 의원 등 10명이 올해 3월 12일 '테러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세 가지 법안의 골자는 테러와 관련된 정보 수집과 분석 등을 위해 국가정보원장 소속으로 '대테러센터'를 두도록 한 것이다.
명칭만 조금씩 다를 뿐 국정원 산하의 대테러센터에서 테러위험인물에 대해 통신이용과 출입국, 금융거래 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만 송영근 의원 안에는 대테러센터장이 테러단체의 지정과 해제도 건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병석 의원과 이노근 의원 안에서는 이런 내용은 빠졌다.
온라인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테러 활동 감시를 위한 사이버테러 방지법의 경우 2013년 4월과 올해 6월 서상기, 이노근 의원이 각각 발의해 계류 중이다.
두 법안 모두 국정원장이 사이버 위기관리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국정원장 소속으로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두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법안에 대해 야당은 '국정원 강화법'이라고 비판하며 이 법안 내용대로는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이 법이 테러사건이 터졌을 때 분석·대응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테러 위험인물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사찰을 하거나 반정부 단체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악용하는 등 국정원의 기능만 강화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여당이 발의한 사이버테러방지법에 대해 "사이버국가보안법이 될 위험이 있다. 국정원이 온라인상 개인정보를 감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라면서 "현재로선 국정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법을 (국정원에) 맡길 수 없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최 정책위의장은 야당의 입장은 변재일 의원이 제출한 정보통신기반보호법 개정안에 나와 있듯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국가정보통신기반안전센터를 설치해 사이버 테러에 대응토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해서도 최 정책위의장은 "테러 개념이 불명확해서 인권을 침해하고 남용할 위험성이 있고,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있으며 권력의 남용 위험성을 경계한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테러방지법의 경우 16대 때 정부안으로 발의된 바 있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17대 때도 공성진 의원 등의 주도로 3건, 18대 때도 2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 감청허용·금융정보제공 관련법 논의도 지지부진 = 테러방지법 뿐 아니라 테러와 관련해서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거나 온라인 해킹을 허용하는 벙안,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를 국가정보원에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청문제와 연관된 통신비밀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경우 올들어서만 10여건이 발의됐지만 여야간 시각차가 뚜렷하다.
새누리당은 주로 국가안보를 위한 목적으로 감청을 보장하는 법안을 제출한 반면 야당에서는 사생활보호를 위해 감청이나 해킹을 규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수사기관이 국가안보와 범죄수사를 위해 휴대전화 감청을 요청하면 이동통신사가 의무적으로 협조하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수사기관이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등 포털에 개인정보를 요청할 때 법원의 영장을 반드시 받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출, 여야의 입장이 상반되고 있다.
FIU 정보를 국정원에 제공하도록 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도 여야 의견차로 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박민식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에서는 현재 검찰, 경찰, 국민안전처, 국세청, 관세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7곳으로 한정된 FIU 정보 제공기관에 국정원을 포함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또 FIU 정보를 제공하는 중대범죄에 대테러·방첩관련 정보 업무를 추가해 테러 위협이나 국제테러방지 공조 등을 위해 FIU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최 정책위의장은 FIU 법안에 대해서도 "금융거래 내역 및 통신 확인권한을 전부 국정원에 부여하게 돼 그야말로 초법적 감시기구가 탄생하는 셈"이라면서 "저희는 금융거래내역은 FIU가 담당하는 것이고, 경찰이 중심이 돼서 부서간 조정 역할을 강화하면 되지 굳이 별도 법을 만들어 국정원에 권한을 강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무위 진정구 수석전문위원은 법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국제사회에서의 테러위협 증가와 북한의 대남공작 및 국제적인 자금세탁행위 등 우리 국민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정보기관의 대응이 요구되지만 국정원은 FIU 정보를 제공받을 권한이 없어 수사 및 정보활동에 있어 곤란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이 과거 정보력을 활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등 직무상 권한을 남용한 사례가 있어 국민의 광범위한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금융거래정보가 제공되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등 통제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2년 이상 낮잠자고 있는 테러방지법안” 19대만 법안 5건 발의
입력 2015-11-15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