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개봉 10일째인 14일 벌써 300만 관객을 동원했죠. 우리나라에서 잘 되기 힘든 본격 ‘엑소시즘’ 영화이기도 하고, ‘기승전강동원’인 영화도 맞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시선 바깥의 희생을 말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검은 사제들’은 세상 곳곳에 악마가 숨어 전쟁이나 재난 등의 참사를 일으킨다는 종교적 설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악마는 자신이 모습을 보일 경우 인간들이 신을 믿기 때문에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 않죠. 한국까지 흘러들어온 악마는 가장 약하고 여린 존재, 소녀 영신(박소담)의 몸을 탐합니다. 김신부(김윤석)와 최부제(강동원)가 이 소녀를 구하려고 구마예식(악마를 퇴치하는 행위)을 거행하게 되죠.
김신부는 졸지에 부마자(악령이 몸에 씌인 사람)가 돼 숨만 붙어 있는 상태의 영신을 위해 사력을 다해 왔습니다. 여러 사제들이 그를 돕다가 강력한 악마의 힘에 구마를 포기했지만 김신부만은 영신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죠. 구마에 실패할 때마다 온몸이 검은 반점으로 물들지만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영신의 목숨이 끊어지면 악마도 사라지는 상황에서 김신부는 갈등합니다. 신의 종복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영신을 알던 한 인간으로서는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힘든 탓입니다.
그러던 중 김신부는 잡귀에 시달리던 정신부(이호제)를 구하기 위해 병원을 찾습니다. 정신부는 김신부의 사부 격으로 평생을 신께 봉사하고 희생하며 살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병실에서 초라하게 죽어가고 있죠. 그 허망한 모습을 본 김신부는 흔들리지만 영신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최부제에게도 “평생 술 없이 잠도 못 자고, 악몽에 시달리는데도 어떤 보상도 없다. 그래도 이 일을 하겠니?”라고 묻습니다. 나약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질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김신부와 최부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명동 한복판에 좁다랗게 나 있는 골목, 그 안의 영신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아무도 발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어둠 속에 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최부제는 구마예식 도중 악마가 상기시킨 트라우마에 잠깐 영신을 등지려하지만,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옵니다. 김신부와 최부제의 희생은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단편‘12번째 보조사제’에도 나왔던 말이지만, 사람들은 어둠보다는 밝은 곳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죠. 두 사제는 이미 어둠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 없이 빛을 믿을 수 있습니다. “어둠을 두려워하되 지지 말라”. 두 사제의 ‘말로 하는 액션’ ‘정신 간의 부딪힘’은 이러한 극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들의 결단보다 더 숭고했던 것은 영신의 행동입니다. 그의 희생은 이 영화에서 “신부님, 전 괜찮아요. 제가 꼭 붙들고 있을게요”라는 단 몇 마디의 대사로 표현되지만 더 할 수 없이 거룩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과 정신으로나마 자신을 죽지도 못하게 괴롭히는 악마를 붙잡고 있겠다는 헌신은 어두운 골방에 빛을 만들어 냅니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12번째 보조사제’에 비해 영신의 희생이 크게 강조되며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가장 연약한 영신의 희생이 수십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어른들이 지키지 못한 아이들의 희생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왔다는데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멀게는 씨랜드 화재가 그랬고,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검은사제들’, 소녀 영신에게 빚진 우리의 미래
입력 2015-11-1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