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303명 익사시켰다” 고개 떨군 세월호 선장… 대법원, 살인죄 인정 무기징역 확정

입력 2015-11-12 17:19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 이준석(70)씨에게 대법원이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대법관 13명 전원은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은 이씨가 승객 303명을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결론지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2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구조 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일 때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최초의 판결이다. 이씨가 승객들을 직접 물에 빠뜨리진 않았지만, 익사를 예상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적극적으로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대법원은 이씨가 구조세력의 거듭한 퇴선조치 요청을 묵살했고, 탈출한 뒤 해경에게 선내 상황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승객 안전에 철저히 무관심했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당시 인근 유조선 둘라에이스호로부터 오전 9시13분 처음으로 승객 퇴선조치를 권유받았다. 진도VTS로부터는 9시23분, 25분, 26분 같은 요청을 받았다. 승객들이 오전 9시26분에라도 탈출을 시작했다면 3, 4층 출입구 침수 전 퇴선이 가능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하지만 이씨는 오전 9시37분 이후 진도VTS의 교신에 응답하지 않고 경비정만 기다렸다. 오전 9시46분 세월호 조타실 앞에 도착한 해경 123호 경비정에 탑승했고, 자신이 선장임을 밝히지 않았다. 이씨의 살인죄가 확정된 이날은 주민등록상 이씨의 생일이며, 참사에서 생존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대형인명사고 살인죄 첫 인정… 대법원 13명 전원 의견 일치… 유족들 “조금이나마 위로” -

이준석(70)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데에는 13명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선박에서 절대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선장이 승객 안전을 철저히 방관하며 먼저 퇴선한 행위는 적극적 살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승객들을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고 일갈했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 ‘부작위에 의한 살해’ 모두 인정=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선박에서 선장의 지위를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했다. 권한만큼 책임도 무겁게 봤다. 재판부는 “승객 등 선박공동체에 대한 총책임자로서 위험에 직면하면 선박공동체 전원의 안전이 최종 확보될 때까지 구조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 의무를 방기한 이 선장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체할 경우 승객 등이 익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내버려둔 채 먼저 퇴선했다”며 “승객 안전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방관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행동은 이 선장이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용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퇴선 후 해경에 선내 상황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은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2등 항해사에게 퇴선방송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던 1심 재판부 판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퇴선방송 지시를 하지 않았고, 설령 했다 하더라도 명령에 수반된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지시에 불과하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확정했다.

이 선장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는 적극적 살인행위와 동등한 것으로 평가됐다. 손쉬운 대피·퇴선 명령만으로도 상당수 피해자가 탈출·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내 대기’ 명령을 따른 피해자 300여명의 탈출이 불가능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대형 인명사고에서 살인죄가 인정된 첫 사례다. 그동안 ‘부작위 살인’이 인정된 경우는 대부분 계획적인 살인범죄에서였다. 1992년 10세 조카를 물에 빠지게 유도한 뒤 익사토록 방치한 삼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12일 “선장이나 여객기 기장 등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장과 1등 항해사 강모(43)씨에게 적용된 수난구호법 위반도 유죄로 확정됐다.

◇“선장 지시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치 안 한 선원은 살인 아냐”=이 선장과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강씨와 2등 항해사 김모(48)씨, 기관장 박모(55)씨는 살인 대신 유기치사 등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됐다. 선장 지휘를 받는 이들이 ‘사태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선장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독단적으로 퇴선조치를 강행해야 할 만큼 비정상적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단정키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두 여성 대법관(박보영 김소영)과 박상옥 대법관은 “1·2등 항해사인 강씨와 김씨에게는 선장을 대행할 책임이 있다”며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선장이 퇴선지시나 구조지시를 내리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이어서 선장을 대행해 구조를 지휘할 의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책임을 방기한 강씨와 김씨를 부작위 살인의 공범으로 본 셈이다.

판결 직후 유족들은 “대법원이 선장의 부작위 살인죄를 인정해 1년7개월간의 인고와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위로했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