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가보니’] 산악 케이블카 도미노, 인간의 탐욕은 결국 산을 망가뜨린다

입력 2015-11-11 21:34 수정 2015-11-11 23:00

경남 밀양 천황산 얼음골 케이블카. 운영적자 타개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케이블카 탑승객들의 연계산행을 허용하면서 산 정상부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밀양=구성찬 기자


역시 정설대로 나쁜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지난 8월말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전국에서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설악산 이후 지금까지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발표된 곳은 속리산, 소백산, 지리산, 신불산, 유달산, 마이산 등 31군데에 이른다. 국립공원, 그 중에서도 보전가치가 가장 높은 설악산 정상 가까이에도 케이블카가 허가되는데 못할 곳이 대체 어디 있겠냐고 케이블카를 추진 중인 지방자치단체들은 주장한다.

◇ 설악산이 뚫리며 다시 불붙은 케이블카 사업
10여 년 전부터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했다가 2012년 6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 결정을 내리면서 사업계획을 접었던 지리산권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장 먼저 반색을 했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과 함양까지 4개 지자체가 모두 달려들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서부권개발본부’를 출범시키고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재추진에 나섰다. 경남 산청과 함양의 두 노선안을 합쳐서 한 노선안으로 단일화하고 운행 거리도 8.7㎞에서 10.6㎞로 늘려 잡았다. 수년 전 케이블카 계획 타당성 평가에서 구례에 뒤졌던 남원은 바래봉 인근에 호텔까지 짓겠다고 선언했다.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계획은 과거 4곳에서 3곳으로 줄었지만, 노선은 길어지고 부대시설도 추가됐다. 지리산권 환경단체들은 지난달 17일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공동행동’을 재출범했다.
이러니 환경단체들은 설악산 케이블카 저지목표를 접을 수 없는 것이다. 설악산이 뚫리면 다른 곳들의 개발을 막을 명분이 매우 약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의 멸종위기종 서식지 통과를 묵인하는 등 환경부가 설정한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무력화했다. 전국 120여개 시민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9월초 민관환경정책협의회를 중단하고 환경부 장·차관 퇴진촉구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설악산케이블카 경제성 보고서를 입맛대로 부풀려 조작한 양양군수 등을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전방위 투쟁에 나선 것이다.

◇ 수지타산에도 안맞는 따라하기식 케이블카 건설
전북 진안군은 지난 9월초 추가경정예산으로 마이산 케이블카 타당성 검토 예산을 편성했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두 봉우리로, 우뚝 솟은 암마이봉(646m)과 숫마이봉(678m)이 장관이다. 전라북도는 마이산의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다. 환경단체들은 “이웃 내장산 국립공원의 경우 연 관광객 190만 명 가운데 겨우 10만 명이 케이블카를 이용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면서 “마이산 케이블카는 감가상각비에 못 미치는 수입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시는 소백산국립공원 풍기읍 삼가리에서 비로봉까지 4.2㎞의 케이블카 설치계획을 세웠다. 또 다른 국립공원인 속리산을 놓고 충북도와 보은군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환경영향평가와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조사 용역 등을 위한 4억원의 예산까지 책정했다. 전남 목포시는 지난달 29일 유달산과 고하도를 연결하는 해상케이블카 사업계획을 내놓고 민간사업자 공모를 시작했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은 지난해 9월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반려한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재추진하고 있다. 지금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케이블카가 없거나 설치를 추진하지 않는 곳이 충남, 제주, 세종 등 3곳에 불과하다.
전국적 케이블카 붐에 편승한 따라하기식 케이블카 건설은 환경훼손도 훼손이지만, 경제적 타당성과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환경단체들은 전국의 케이블카 20곳 중 속초, 통영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수익을 내는 곳이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친환경 케이블카 설치방안 연구용역’을 보면 12개 관광용 케이블카 가운데 2011~2013년 연평균 영업이익 10억원을 넘긴 곳은 속초 설악산 권금성(46억8000만원), 통영 미륵산(38억8000만원), 서울 남산(15억4000만원) 등 3곳뿐이다. 나머지 울릉도, 대구 팔공산, 부산 금정산, 해남 두륜산, 완주 대둔산, 정읍 내장산 등이 모두 1억8000만~3억3900만원선으로 투자금액의 이자도 못 건지는 수준이었다. 구미 금오산(7000만원)과 밀양 얼음골(3000만원) 등은 겨우 손실을 면하는 실정이다.
특히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가지산, 천황산 부근까지 올라가는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는 지금 케이블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케이블카 운영회사는 탑승객이 수년간 예상수준에 못 미치자 지난 4월부터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에 대한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어겨가며 연계산행을 허용했다. 그런데도 천황산 바로 맞은 편 7㎞ 떨어진 신불산 정상까지는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이 모두 588억원이 들어갈 예정인 또 다른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 중이다.
울주군에 따르면 ‘영남알프스 행복 케이블카’의 예정노선은 등억신리 주차장의 복합웰컴센터에서 신불산 서북측 2.46㎞ 구간이다. 칼바위 능선을 포함한 신불공룡능선 바로 옆으로 올라간다. 상부정류장에서 기존 탐방로가 107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탑승객 통제방안 등도 논란거리다.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낙동정맥 핵심구역 150m 안에 케이블카가 지나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울주군은 군립공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오는 11월까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작성해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 생태자원과 수익성 모두를 잃는 케이블카 연계산행
지난달 14일 운행 실태를 살펴보려고 밀양 천황산의 얼음골 케이블카를 탔다. 주중인데도 성수기인지라 타는 곳에서 30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1.8㎞ 거리를 두 군데의 중간지주를 거치면서 약 10분에 걸쳐 올라간다. 상부정류장 높이는 해발 1020m. 국내 최고라고 한다. 환경부의 로프웨이(케이블카) 가이드라인에 따라 왕복 통행만 가능하고, 주변부 산행연계를 금지해 왔지만, 운영적자가 누적되면서 지난 4월부터는 연계산행까지 허용한 상태다. 그렇지만 상부정류장 주변에서만도 곳곳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과 담배꽁초가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녹선대를 거쳐 천황산까지 2.1㎞ 구간에는 곳곳에 샛길이 뚫려 있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탐방객들도 줄줄이 정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샛길로 발길을 옮긴다. 억새밭이 훼손된 공터에 자리 잡은 샘물상회에서는 막걸리와 음식을 판다. 공터에 공사차량까지 진입해 어수선했다. 물론 노약자들이 케이블카 덕분에 가족과 함께 높은 곳까지 올라와 능파와 억새군락을 감상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연계된 탐방로 주변이 얼마나 더 훼손될지 걱정이 앞선다. 더욱이 이런 케이블카가 신불산에도 설치된다면 자연은 자연대로 망치고, 탐방객도 분산됨으로써 두 케이블카 사업이 모두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 산에 깃들며 산과 함께하는 ‘착한’ 길이 대안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수익성을 무시한 채 너도나도 케이블카 사업에 덤벼드는 것은 정부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국비를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영 케이블카건설사업에 사업비 173억원 가운데 절반인 87억원을 지원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새로이 추진되는 31곳의 케이블카 가운데 16곳이 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공방식이다. 강원도부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비 450억원의 50%를 정부가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케이블카 사업을 벌여 선거용 업적으로 삼고, 지역 건설업체는 ‘한탕’을 하겠지만, 대부분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지자체의 빚과 쓰레기뿐이다. 권금성 케이블카가 운영중인 설악동 상가에서도 케이블카 바로 밑의 음식점만 한 철 장사가 될 뿐 나머지 상가 전체는 깊은 불황에 빠져 있다. 주민들에게 실익이 돌아가는 마을 숲 가꾸기, 낮은 고도에서 산을 조망하면서 걷는 둘레길이나 트램카와 같은 저속 교통수단을 이용한 관광상품 등이 케이블카 사업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유망한 대안이다.
밀양=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