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너무하네"...기업은 물론 지자체에도 '갑질'

입력 2015-11-11 17:43
정부청사 입구의 모습. 국민일보 자료사진

국가 공무원들이 수사·세무·허가·감독 등 ‘갑(甲)’ 지위를 이용해 각종 금품과 향응을 받거나 일과 시간 중 골프를 치는 등 직무태만을 일삼은 적나라한 사례들이 공개됐다. 인사혁신처는 11일 처음으로 공무원 징계사례집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영전(榮轉) 대가 500만원, 조의금 1100만원=공무원의 갑질은 권력기관에 근무할 경우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국세청 직원 A씨는 정기 세무조사 대상 기업 대표로부터 영전 축하 명목으로 현금 500만원을 받았다. 세무조사 무마용 청탁 대가임이 분명했지만 그는 ‘회식비’ 명목이라며 개의치 않고 받았다가 국가공무원법 상 청렴 의무 위반으로 중징계 및 4배의 징계부가금 처분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B씨는 한 유통기업 임원으로부터 새로 이사한 집에 들어갈 TV, 냉장고, 전자렌지, 커피포트 등 약 7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 일체를 받았다가 징계를 받았다. B씨는 처음에 이를 도로 가져갈 것을 요청했지만 기업 측이 “회사 임원이 쓰던 것이니 부담 없다”며 다독이자 이를 받아들였다.

공무원들이 경조사 후 받는 부조금은 액수부터 달랐다. 공무원 C씨는 부친상 당시 한 금융지주 회장과 감사로부터 각각 1100만원의 조의금을 받았다. 그는 이를 알고도 1년6개월이 지나도록 반환하지 않다가 해임 처분됐다. 공무원 D씨도 장모상을 치르며 건설현장 노동자 125명으로부터 930만원을 받은 뒤 100만원만 돌려줬다가 징계 처분됐다. 공무원은 5만원을 초과하는 부조금은 받지 못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대통평 표창과 함께 받은 상금을 해당 중앙부처 공무원이 되돌려 받은 경우도 있었다. E씨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지자체가 ‘수상 사례금’ 명목으로 현금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부하직원을 보내 현금이 든 봉투를 받아왔다. 이 봉투에는 상금 300만원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E씨는 이 돈을 부하 직원들과 나눴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고, 정직 2개월과 2배의 징계부가금을 내게 됐다.

◇직무 태만, 품위 손상…파렴치한 비위들=“압수수색을 나가게 됐습니다.” 얼핏 무슨 맥락인지 모를 이 말은 다름 아닌 해경 수사정보국장이 수사대상인 한 조합 본부장에게 전화해 ‘귀띔’해준 말이다. 그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자마자 정보를 흘렸다가 해임 처분됐다.

선배의 권유로 한 기업 주식을 사들인 수사당국 공무원 F씨는 이 기업에 대한 고소가 들어오자 통합사건조회시스템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의 정보를 26회나 조회했다. 그는 고소사건의 원활한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본인은 물론 두 딸까지 동원해 이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게 들통나 감봉 3개월을 받았다.

이 외에도 오후 반일(半日) 휴가를 낸 뒤 오전부터 기업 임원과 골프를 치러가거나, 제주 국제공항에서 주차위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물 묻은 화장지로 번호판을 가리는 등 각종 파렴치한 비위들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