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목이 멘다… 한국, 라면 소비 세계 1위

입력 2015-11-11 15:57 수정 2015-11-25 17:56
사진=국민일보DB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선택의 고통은 가중된다. 이 선택과 버려짐의 괴로움을 실존적 고통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라면이나 자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힌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이 문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훈이 1999년 1월27일 국민일보 30면 ‘김훈의 미셀러니’ 코너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당시 그는 국민일보 편집위원이었다. 2870자 중수필의 제목은 “후루룩 목이 멘다…라면”이다. 이 글은 올해 새로 나온 김훈의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에 부분 재수록됐다.

김훈은 16년전 글에서 “라면은 규격화되어서 대량 소비되는 음식”이라며 “수많은 남들이 나와 똑같이 이 미끈거리는 밀가루 가락을 빨아들이고 있으리라는 익명성의 안도감도 작용하고 있을 성 싶다”고 했다. 이어 “이래저래 라면의 인은 골수염처럼 뼈 속에 사무친다”고 했다. 라면의 맛은 “산업화 도시화 시대 전체의 삶의 맛”이라며 “그 맛에 인이 박히고 거기에 주눅들려 살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이 있다고도 했다. 예감은 현실이 됐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장복으로 인이 박힌 탓인지 한국인의 라면 소비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1인당 1년간 76개를 먹는다고 집계됐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11일 발표한 2015 가공식품 세분화 현황 면류편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면이 주식인 더운 지역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사람들조차 연간 각각 55.1개 52.8개 45.3개 밖에 라면을 먹지 못했다. 한국 사람의 라면 사랑이 월등함을 엿볼 수 있다. 라면의 인이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에 박힌 탓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