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무단 횡단하던 보행자를 친 차량 운전자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들은 운전자가 보행자를 발견하고 급제동을 하는 등 주의 의무를 다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배심원의 평결을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엄상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이모(4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1월 자신의 SUV 승용차를 몰고 서울 강남의 편도 4차로 도로를 달리다 반대편 차선 쪽에서 건너 오던 A씨를 치었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몇 시간 뒤 뇌부종 등으로 숨졌다. 검찰은 “전방을 잘 살피고 제동장치를 정확히 조작해 사고를 방지해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씨를 기소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선 A씨가 무단 횡단을 한 점이 가장 먼저 고려됐다. 당시 사고지점 바로 앞까지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A씨가 길을 건넌 지점은 중앙분리대가 일부 설치되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1차로에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버스가 서 있었다. 재판부는 A씨가 버스 앞으로 걸어 나오기 전까지 이씨가 무단 횡단하던 A씨를 발견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고 봤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교통사고 감정서에 따르면 이씨는 A씨를 발견하고 약 1초 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이때는 A씨와 불과 20m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라 충돌이 불가피했다. 이씨의 주행 속도는 제한속도(시속 70㎞)에 못 미치는 63.1㎞였다. 이 속도로 주행하는 차량이 정지하기 위해 필요한 거리는 약 36.1∼37m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해가 뜨기 전 어두운 새벽이었다. 검은색 상의를 입은 A씨가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어 이씨가 쉽게 식별하기 어려웠던 점도 고려됐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도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무단횡단 보행자 친 운전자… 국민참여재판 ‘무죄' 판결
입력 2015-11-10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