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치 그램프스(Beach Gramps 해변의 할배들)’라고나 해야 할 미국의 오래 된 록그룹 비치 보이스 얘기를 그린 영화 ‘사랑과 자비(Love and Mercy, 2014)’를 봤다. 그러나 비치 보이스 영화라기보다는 멤버 중 하나인 브라이언 윌슨에 관한 영화라고 해야 옳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멤버들이나 그룹 얘기는 일절 없고 오로지 윌슨만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거와 미래의 브라이언 윌슨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윌슨역은 더블 캐스트로 1960년대의 윌슨은 폴 대노, 80년대의 윌슨은 존 큐색이 맡았다. 재미있는 것은 둘이 외모에서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
또 이 영화는 전기영화라기에도 주저스러운 게 윌슨의 인생행로나 행적을 따라가기보다는 그의 뒤틀린 내면세계에 더 천착한다. 그러다보니 극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지루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음악인 전기영화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저지 보이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저지 보이스가 팝스타 프랭키 밸리를 중심으로 한 그룹 포 시즌스의 스타 탄생 및 흥망성쇠를 연대기 순으로 그린 데 비해 ‘사랑과 자비’는 비치 보이스가 정상에 오른 뒤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윌슨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핑 사운드를 창안한 록그룹 비치 보이스에 관한 얘기가 보고 싶다면 이 영화보다는 2000년에 만들어진 TV 영화 ‘The Beach Boys: An American Family'를 보기를 권한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계기로 할리우드 영화의 한 흐름이 되고 있는 대중음악인 전기영화들을 살펴본다. ‘저지 보이스’ 외에 비교적 최근에 나온 기억할 만한 영화로는 소울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을 그린 ‘Get On Up’(2014), 피아노 연주자로서 요란스런 의상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라스베이거스 무대를 주름잡았던 ‘미스터 쇼맨쉽’ 리버라체를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해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을 받은 ‘리버라체(Liberace, 2013)’, 전설적인 맹인 리듬 앤드 블루스 가수 레이 찰스를 그린 ‘레이(Ray, 2004)’가 있다, 이 영화에서 레이 찰스역을 맡은 제이미 폭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2009년에는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을 다룬 ‘Nowhere Boy'가 나왔고, 2005년에는 컨트리음악의 거인 자니 캐쉬의 전기물인 ‘워크 더 라인(Walk the Line, 호아킨 피닉스 주연)’이 공개됐다. 이런 영화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포크가수 밥 딜런을 다룬 ‘I'm Not There(2007)'였다. 뭐가 특이한가 하면 무려 6명의 배우가 딜런의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연기했다는 점. 거기에는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리처드 기어가 포함돼 있었고 심지어 여자인 케이트 블랜체트까지 끼어있었다.
이와 함께 음악인 전기영화라면 결코 빠질 수 없을 마이클 잭슨에 관한 것도 물론 있다. ‘거울 속의 사나이: 마이클 잭슨 스토리(Man in the Mirror: The Michael Jackson Story, 2004)’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가 개인적 욕심을 부려 만들었다는 바비 다린의 전기영화 ‘Beyond the Sea(2000)'도 빼놓을 수 없다. 다린을 너무 좋아한다는 스페이시는 그에 대한 집착이랄지 욕심이 너무 지나쳐 영화의 공동각본, 공동제작, 연출을 맡은데 더해 주역인 다린 역까지 꿰찼다. 그러나 그의 노래솜씨는 훌륭했지만(영화에서 스페이시는 다린의 히트곡들을 직접 불렀다) 몸집이 작은데다 얼굴도 귀여운 편인 다린과 외양에서 전혀 닮지 않아(스페이시는 다 알다시피 덩치가 크고 느물느물한 중년 아저씨 인상이다) 위화감을 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와 함께 영국의 비틀스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팝계가 1960년대에 기획해 만들어낸 록그룹 몽키스를 다룬 ’Daydream Believers: The Monkees Story(2000)'가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팝스타와 작곡가, 연주자 등 대중음악인들의 전기영화는 많았다. 특히 ‘록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를 다룬 영화는 그의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말해주듯 한두편에 그치지 않고 여러 편이 만들어졌다.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역 출신의 중견배우 커트 러셀이 훌륭히 엘비스역을 해낸 ‘엘비스(1979)’부터 엘비스가 닉슨 대통령과 만난 실화를 다룬 ‘엘비스, 닉슨과 만나다(Elvis meets Nixon, 1990)'를 거쳐 신예 존 리스 마이어스가 엘비스역을 맡은 ’엘비스(2003)‘와 매트 루이스라는 엘비스 흉내전문가가 엘비스역을 한 ’왕의 눈물(Tears of King, 2007)'까지.
또 재즈 뮤지션들도 전기영화의 주역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 이야기 ‘버드(Bird, 1988, 포레스트 휘태커 주연)'를 비롯해 전설적인 여자 재즈싱어 빌리 홀리데이를 다이애나 로스가 연기한 ’블루스를 부르는 여인(Lady Sings the Blues, 1972). 이밖에 17세의 젊은 나이에 비행기사고로 세상을 뜬 최초의 히스패닉계 팝스타 리치 발렌스를 다룬 ‘라 밤바(1987,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주연)’도 기억나는 영화다.
이같은 대중음악인에 관한 전기영화는 일찍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1926)’에서 주연을 맡았던 ‘세계 최고의 연예인’ 앨 졸슨의 전기 영화 ‘앨 졸슨 스토리(1946)’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50년대에는 한때를 주름잡던 밴드 리더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들이 쏟아졌다. 스윙음악의 대가 ‘글렌 밀러 스토리(1954,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클라리넷 연주자 ‘베니 굿맨 스토리(1956, 스티브 앨런 주연)’ 그리고 명 피아니스트 에디 듀친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려 눈물 자아내는 멜로드라마로도 크게 성공한 ‘애심(哀心 The Eddy Duchin Story, 1956, 타이론 파워 주연)’ 등은 나이 든 세대라면 향수와 추억에 젖을 만한 멋진 ‘흘러간 명화’들이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4) 음악인들의 영화
입력 2015-11-09 14:11 수정 2016-01-05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