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어떻게 선거로 집권할 수 있었는가는 계속되는 현대사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동안 1차대전 패전과 과도한 배상금 부담에 따른 독일의 사회·정치적 상황이 나치 독일의 출현을 이끌었으며,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홀려 나치란 범죄 집단의 인질처럼 끌려갔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 대해 당당히 ‘반기’를 든 주장이 나왔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이끌린 것이라기보다는 히틀러의 ‘기민한 상황 판단’과 정치 감각이 독일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제기한 것은 독일 출신 역사학자인 페터 롱게리히 영국 런던대 교수다. 그는 오는 9일 출간되는 히틀러의 새 평전 ‘히틀러’에 이런 관점을 담았다고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롱게리히 교수는 “히틀러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에 부합하도록 각각의 상황을 이용할만한 능력이 있었다”면서 히틀러이 정권 유지 비결이 카리스마보다는 치밀한 정치적 판단에 있다고 주장했다. 롱게리히 교수는 히틀러의 초기 연설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일기를 근거로 들었다.
히틀러가 6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단순히 그가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반유대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면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롱게리히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1919∼1920년 무렵부터 히틀러는 반유대주의를 정치적 선동에 이용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국민들이 그에게 ‘홀려서’ 유대인 학살 등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 사이의 ‘반유대’ 정서를 잘 이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롱게리히 교수는 히틀러 지지자 내에서도 기회주의적인 세력이 있었으며 나치 정권에 대한 불만과 그에 따른 사회적 긴장은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처럼 뿌리 깊게 분열된 나라가 갑자기 똘똘 뭉쳐 한 사람을 지지하고 하나의 정치적 관점을 공유했다는 생각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또 최근 중동 난민 유입 사태로 독일에서 극우파가 득세하는 현상과 관련해 “정치적 분위기가 거칠어진 상황에서 어느 한 인물의 부상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히틀러가 카리스마로 독일을 휘어잡았다고? 틀렸다”
입력 2015-11-08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