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리을설 장의위원회 배제...실각설 무게”

입력 2015-11-08 17:15

'빨치산 출신' 북한의 혁명 1세대인 리을설 북한 인민군 원수가 7일 오전 10시 10분(이하 북한시간) 폐암 투병 중 94세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북한은 리을설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장례는 8일 오후 4시부터 10일 오후 9시까지 조문객을 맞은 후 11일 오전 9시에 발인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리을설의 시신은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 안치됐으며, 우리의 국립묘지격인 애국열사릉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국가장의위원회에는 위원장 김정은 이외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 총리,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등 170명이 위원으로 명단을 올렸다.

하지만 최룡해 당 비서는 위원 명단에서 빠졌다. 정부 당국은 최룡해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지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빨치산 2세대인 최룡해가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한 리을설의 장례위원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고,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룡해가 정치국 위원과 비서직이라는 핵심 직책에서 해임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1921년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청진시 빈농에서 태어난 그는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다.

통신은 "리을설 동지는 일제 통치의 암담한 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직영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해 조국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강조했다.

리을설은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6기를 제외하고 지난해 13기까지 내리 10선에 성공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제4사단 참모장을 거쳐 1972년 상장, 1985년 대장, 1992년 차수에 올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원로 예우 정책'에 따라 1995년 10월에는 인민군 원수 칭호를 받았다.

역대 인민군 원수(오진우, 최광, 리을설) 중 유일한 생존자였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을 제외하면 북한 내 유일한 원수이기도 했다.

리을설은 1990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국방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리을설은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대를 이은 충성 행보를 이어갔다.

리을설은 2014년 7월 김일성 사망 20돌 중앙추모대회와 올해 7월 제4차 전국노병대회, 8월 북한해방 70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잇달아 참석해 원로와 연결 고리가 약한 김정은에 힘을 실어주었다.

2013년 9월에는 노동신문에 '김일성대원수님은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란 글을 기고해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시절과 한국전쟁 때 업적을 치켜세우며 김정은이 백두 혈통의 정통 계승자임을 부각시키며 김정은에 충성을 맹세했다.

1984년부터 2004년까지 김일성, 김정일의 경호 책임자인 호위사령관을 역임한 그는 내성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으로, 여자 문제 등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