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잘리고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반 고흐. 나광호 작가의 신작이 재미있다. 고흐의 작품이나 어느 누군가가 고흐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을 다시 패러디한 듯한 그림이다. 작가는 이를 ‘Infandult’(Infant+Adult)라고 정의한다. 유아와 어른, 순수와 경험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그의 작가노트를 보자. “기술복제의 시대에 타인의 손과 눈을 빌려 예술의 원본성, 고유성, 오리지널리티란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판화 방식의 에디션이 가능한 작업 방식을 통해 차용, 이미지에 대한 해체와 조합이 작업의 시작이 된 계기라 하겠다.”
자신의 작업은 스스로에게 없는 것을 빠르게 인정할 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열리고 형식의 확장이 가능한가를 실험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전체적인 작업의 맥락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린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지니는데 작업의 특징은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분명하다는 것이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일체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작업에 사용되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조합하는 원칙은 대략 여섯 가지다. 1. 나의 제자의 것 2. 선험이 존재하지 않는 저학년의 관찰력 3. 제한 없는 상상력 4. 부담감 없이 분출하듯 그린 것 5. 틀린 것, 덜 그린 것, 못 그린 것 6. 제자의 허락을 득한 것.
그는 “결국 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 되는 것, 나에게 없는 것 정도가 되는데 나는 이러한 지점들이 굉장히 회화적이고 흥미를 일으키며 매력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은 작업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와 그리기, 찍기, 만들기라는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즐거운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의 작업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작업의 영역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개인전이 11월 12일부터 28일까지 ‘Amuseument’라는 타이틀로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청화랑에서 열린다. ‘Infandult’라는 제목의 작품이 출품된다. 고흐를 소재로 한 것도 있고 어린 아이들이 낙서하듯 그린 작품도 있다. 여섯 가지의 원칙 아래 빌려오고 조합한 그림이 순수하면서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02-543-1663).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기술복제시대에 오리지널은 유효한가” 고흐 패러디 나광호 작가 청화랑 ‘Amuseument’ 전 11월12~28일
입력 2015-11-07 22:17 수정 2015-11-09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