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자의 ‘destroy’ 협박, 한국은 날 외면했다… 페북지기 초이스

입력 2015-11-07 00:04 수정 2015-11-07 22:56

한국인 여성이 필리핀에서 현지인 남성으로부터 ‘I will destroy you’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이 여성은 차로 5시간이나 떨어진 마닐라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요. 한국대사관측은 그러나 황당한 이유를 들며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이 여성은 주장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7일 페북지기 초이스입니다.

한국인 여성 A씨(51)는 전날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필리핀에서 현지인 남성으로부터 생명에 큰 위협을 느껴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지만, 대사관 직원은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며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지난 4월 필리핀 남성 B씨가 A씨를 상대로 험악한 단어가 들어간 폭언을 일삼으면서 시작됐습니다.

A씨는 B씨가 보냈다는 문자를 공개했는데요. 문자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악의적입니다.

“I don't want to see your face, you destroy my family i will destroy you!!”

“Remember you are a foreigner in the Philippines. You might find yourself not being able to return there.”

우리말로 해석해볼까요?

“난 네 면상 보고 싶지 않다. 당신이 우리 가족을 파괴시켰으니 나도 널 파괴시킬 거야.”

“명심해라. 넌 필리핀에서 외국인이다.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B씨가 A씨에게 이렇게 화를 낸 건 A씨 부부의 일로 자신의 아내와 결별하게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년 전 필리핀 남성인 C씨와 결혼한 A씨는 갈 곳 없는 필리핀 아이들을 입양해 필리핀에서 키웠습니다. A씨는 지난해부터 한국에 나와 통역일을 했다고 해요. 필리핀 아이를 입양하려면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한국인 아이들을 필리핀에 있는 C씨에게도 보내기도 했다는군요. A씨는 그러나 C씨가 외도를 한다는 말을 한국인 아이들로부터 전해 듣고 필리핀으로 다시 달려갔다는군요.

그 와중에 B씨는 A씨를 옹호하는 자신의 부인과 헤어졌고 이후부터 A씨와 한국인 학생들을 줄곧 협박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필리핀 남성으로부터 무서운 말을 들은 A씨는 C씨의 외도를 보다 못해 집에서 뛰쳐나온 한국인 아이들과 함께 한국대사관을 찾아갔다고 하네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마닐라 한국대사관까지 차로 5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A씨 일행을 마주한 한국대사관측 직원은 그러나 냉담했다고 해요.

A씨는 “어렵사리 대사관까지 찾아갔는데 직원은 ‘destroy는 kill이 아니니 뭘 그렇게 겁을 먹느냐’면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이혼하세요’라는 타박만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혹시 자신과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알 수 있게 B씨와 자신들의 명단을 종이에 적어 대사관에 접수하려고 했지만 대사관 직원은 “우리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명단조차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하다못해 현지 경찰에 연락을 취해주는 노력도 해주지 않았다는군요.

A씨는 “필리핀에서는 청부살인도 흔합니다. 저와 한국인 아이들이 필리핀에서 필리핀 남성들로부터 폭언 섞인 협박을 받아 얼마나 무서우면 도움을 요청하러 5시간이나 달려 찾아갔겠어요. 그런데도 한국대사관에서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자국민들을 냉대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그 때 받은 모멸감과 충격이 다시 생각나는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A씨는 “한국대사관이 그렇게 자국민을 홀대하니 필리핀인들도 한국인들을 업신여기고 막 대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현재 한국으로 나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 아이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필리핀 한국대사관측은 A씨의 주장에 대해 확인해보겠다고 했습니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페북지기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식적으로 ‘kill 보다 낮은 수준의 destroy이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할 사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또 그런 민원을 한 한국인에게 최소한 현지 형사고소 절차 등이라도 안내해주지 않았다니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당시 A씨의 방문 기록 등을 찾아보겠다고도 했습니다. 과연 A씨가 찾아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지 궁금합니다.

앞서 필리핀에서 이슬람 반군세력에게 납치됐다 10개월 만에 질병으로 숨진 채 발견된 한국인 남성 홍모(74)씨의 사건을 놓고 유족들은 우리 외교 당국의 무대응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유족은 페북지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외교부는 납치 단체와 어떠한 협상도 할 수 없고 몸값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석방을 위해 몸값이라도 대출받을 수 있게 보증을 서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마저 거절했다. 현지 브로커 등도 검증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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