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휴스턴 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성 소수자 보호 ‘영웅’ 조례가 반대 측의 ‘화장실’ 공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4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휴스턴 시에서 실시된 평등 조례안 찬반 주민투표에서 반대(61%)가 찬성(39%)을 압도함에 따라 조례안이 조만간 폐기될 예정이다.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애니스 파커 시장은 지난해 5월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LGBT)와 같은 성 소수자를 주택 계약, 고용, 공공시설 이용에서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인권 조례안을 제정했다.
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휴스턴 평등 인권 조례안(Houston's Equal Rights Ordinance)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영웅(HERO) 법안’이라고 불렀다.
소수자 인권보호에 큰 관심을 둔 백악관과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 애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이에 적극 찬성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은 이 조례가 여장한 남성 또는 성적 약탈자로 하여금 여자 화장실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한다며 ‘화장실(bathroom) 법안’으로 명명했다.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와 댄 패트릭 주 부지사 등 공화당 인사들이 반대편에 가세했고 보수 개신교 목사들도 화장실 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휴스턴 시의회는 찬성 11, 반대 6으로 조례안을 가결했지만, 1년이 넘은 송사 끝에 텍사스 주 대법원은 지난 7월 휴스턴 시에 이 조례를 폐지하든지, 주민투표에 부치라고 명령했다.
주민투표에서 공화당은 보수 유권자들의 보호 심리를 자극했다. 여자로 변장한 남자들이 여성 화장실에 침입해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들은 광고에서도 화장실 사진 위에 ‘언제든 어떤 남자든(Any Man Anytime)’이라는 간명한 문구를 쓰고 이 조례안이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가는 법안’이라고 공격했다.
패트릭 주 부지사는 선거 승리 후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 아내와 여동생, 딸과 손녀를 지키는 것”이라면서 “옳지 않은 정치적 정당성을 휴스턴 시민이 끝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조례를 폐지하면 성 소수자들의 차별을 조장하는 ‘종교자유법안’으로 거센 역풍을 맞은 인디애나 주처럼 휴스턴의 도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휴스턴이 2017년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을 개최하기로 한마당이어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조례 시행 3개월째를 맞이했지만, 여장 남성 또는 남성이 화장실에서 여성을 공격했다는 보고는 휴스턴 또는 다른 도시에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
'화장실' 공세에 좌절된 美성소수자 보호 '영웅' 조례
입력 2015-11-05 13:29 수정 2015-11-05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