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을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로 돌아온 밴드 '못'

입력 2015-11-04 17:27

남극 여행을 마치고 칠레에서 일주일을 더 머물렀다. 차가 달리는 곳은 비가 오지 않는데, 먹구름이 있는 저 앞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묘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가사를 썼다. 밴드 ‘못’(Mot)의 보컬 이이언의 이야기다. 8년 만에 신곡으로 돌아온 ‘못’의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2004년 보컬과 기타 2인조 밴드로 시작한 ‘못’은 앨범 2장(‘비선형’·‘이상한 계절’)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2004년)과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2008년)을 수상했다.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지만 마니아층이 두텁다. 2007년 2집을 끝으로 이이언은 솔로 앨범을 2장 냈다.

이제 이이언은 다시 ‘못’으로 돌아왔다. 조남열(드럼), 이하윤(건반), 송인섭(베이스), 유웅렬(기타)의 5인조 밴드가 됐다. 5인조 밴드로 신곡을 발표한 ‘못’을 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못’은 이달 17일 두 번째, 다음달 중순 세 번째 싱글 앨범을 낸다. 정규 앨범은 내년 초 발매 예정이다.

첫 번째로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를 내 놓은 건 어떤 의미일까. 이이언은 “팬들에게 5인조 밴드 ‘못’에 대한 우려를 덜어드리려는 곡으로 골랐다”고 했다. 밴드로써 변화된 점들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요소도 담겨 있다. 5인조 밴드로 바뀌어도 ‘못’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앨범인 것이다.

이이언은 악기 앞에서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손에 익은 방식으로 습관적인 음악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해요. 머릿속에서 좋은 음, 좋은 리듬을 생각해서 연주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는 게 조금 더 참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이이언)

대신 밴드가 연주하기에는 지극히 까다로운 곡들이 나오기도 한다. “악기의 편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좋은 음악만 만들다 보니까 보통은 연주되지 않는 방법으로 해야 할 때가 있어요.”(이하윤)

그동안 이이언은 혼자 모든 것을 만들었다. 보통은 먼저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든다. 작곡과 편곡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작업을 하곤 했다. 싱어송라이터 이이언 대신 밴드 ‘못’으로 돌아간 것은 그런 작업 스타일로는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솔로 작업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이런 식으로 계속 음악을 할 수 없겠다’ 였어요. 강박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도 아니고, 이렇게는 길게 음악이라는 커리어를 갖고 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제 명에 못 살겠다는 그런 느낌도 들었어요.”(이이언)

그래서 이이언이 선택한 것은 밴드 ‘못’이고, 공동작업이다. ‘못’의 새 앨범 작사·작곡은 ‘못’이다. 이이언이 중심이 되긴 했겠지만 누가 얼마만큼 간여했는지를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다고 한다.

“공동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밴드로 간 거죠. 멤버들과 함께 하는 파트너십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있었고요. 제가 ‘척’하면 저쪽에서 ‘척’하고 받아주는 그런 느낌의 파트너십이요.”(이이언)

밴드 멤버들은 2012~2013년부터 세션으로 이이언과 호흡을 맞춰왔다. 하지만 ‘못’이란 밴드로 본격적으로 함께한 것은 지난해 4월쯤부터다. 아직 ‘척하면 척’이 완전히 순조롭지는 않은 모양이다. ‘못’은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 있다. 그게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음반 작업은 어떻게 할까. 보통의 밴드들이 함께 모여 연주를 해보고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못’의 작업 방식은 조금 다르다. 먼저 음악에 대한 설계가 그려져 있고, 거기에 멤버들의 의견이 더해진다.

“다른 밴드들과는 방식이 다른데 신선하고 재밌어요. 이언이 형이 원하는 걸 만들어 냈을 때 성취감도 있고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친밀해요. 세션으로 작업할 때보다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고 부담도 되지만 재밌습니다.”(유웅렬)

‘못’에서 이이언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못’은 곧 이이언이라고 떠올리는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합류한 멤버들은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함께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독특한 방식의) 작업이 자연스러워지고 그게 우리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들도 설득시키고요. 제가 해 왔던 음악과 ‘못’의 음악은 다르겠지만, 애초에 ‘못’과 맞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같이 안 했겠죠.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맞춰나가고 싶어요.”(이하윤)

‘못’은 정체성이 중요한 밴드다. 팬들이 원하는 게 그렇고, 밴드가 추구하는 바가 그렇다. 그렇다면 ‘못’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게 적합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굳이 얘기하자면 이렇다.

“관습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시도들을 하면서 미묘한 지점들을 계속 조정해 나가는 게 ‘못’의 음악인 것 같아요.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거죠. 익숙한 것도 낯선 것도 계속 변하잖아요. 그래서 ‘못’이 추구하는 지점도 계속 변해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이이언)

아직 5인조 밴드 ‘못’으로 활동 기간이 길지 않지만 다른 멤버들도 ‘못’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다.

“‘못’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원래 되게 밝은 사람인데 이 음악을 계속 듣다 보니까 좀 우울해지는 것도 같고.(웃음) 이 팀을 하려면 정서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차분함을 유지하고, 그런 걸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조남열)

‘못’의 음악은 은희경 김영하 등 소설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못’의 음악에 담긴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문학적인 표현들이 작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멤버들은 ‘못’의 가사가 밴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음악에 담겨진 메시지가 표현되는 방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마니아 팬들에게도 그런 부분들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고요. 비유적이고 은유적이고 중의적인 표현들과 거기에 담긴 메시지들이 중요한 거죠. 대중은 쉽고 빠르고 고민 안 하는 걸 원할 수 있는데, ‘못’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여러 감정들이 느껴지는 그런 음악이죠. 그래서 좀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송인섭)

멤버들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밴드지만 그게 음악을 가두지는 못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못’의 정체성을 정해놓고 맞추려고만은 하지 않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후 저의 결과물이 지금까지 결과물보다 많아졌을 때 ‘못’의 색깔을 말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이하윤) “어떤 팀이든 정체성 안에 가둬놓고 음악을 하는 팀은 많지 않을 거예요. 계속 발전하고 변해가야 하는 거죠. 자연스럽게.”(유웅렬)

‘못’은 당장 내년 1월 발매 예정인 정규 3집 음악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새 앨범이 나오면 단독 공연 등 크고 작은 공연 일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