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경찰서 간부가 후배 여경을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경찰 관계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피해 여경의 입장을 고려해 달라며 “이렇게 보도되면 곤란하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조사한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3일 해당 간부에게 성폭행 혐의(준강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사대는 성폭행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지난달 16일 이 경찰서 회식자리 후에 벌어졌다. 피해 여경이 새로 전입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직장 성폭력의 ‘단골무대’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경찰은 우선적으로 당시 상황을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경찰서 간부들은 쉬쉬했다. 한 관계자는 “성추행이었다고 보고받긴 했지만 어떤 식이었는지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며 “물어보기가 좀 그렇지 않느냐”고 말했다. 성추행인지 성폭행인지 제대로 진상 파악도 안 된 상황에서 외부에는 성폭행을 성추행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경찰은 지난 9월 ‘피해자 보호’를 내세우며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다. 인천 부평에서 ‘묻지 마 폭행’ 사건이 보도되자 기자들에게 일제히 “피해자 측 부모의 영상보도 자제 요청이 있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꺼린 거짓말로 드러났다. 경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의자 삼촌이 그렇게 요청했다”고 해명했는데, 이 역시 거짓이었다. 이쯤 되면 경찰의 설명을 하나하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올해를 ‘범죄 피해자 보호 원년’으로 정했다. 피해자 신변을 보호하고 피해 회복에 힘쓰겠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피해자는 당연히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경찰에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의 인권이 이용돼선 안 된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도 경찰, 가해자도 경찰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줄곧 “여경의 사생활도 있다. 이런 보도가 공익을 위한 일이냐”고만 했다. 일선에서 성범죄를 조사하는 경찰이 경찰서 내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 큰 문제다. 이를 지적하는 일이 공익을 위한 게 아니면, 도대체 어떤 게 공익인지 묻고 싶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