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이웃간의 다툼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층간 소음은 핵가족화와 아파트 생활로 인한 필요악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고 이웃간의 정이 사라져 가고 있는 세태의 반영일 수도 있다. 오래된 옛날에는 한 동네에 사는 이웃의 밥그릇 개수까지 알 정도로 친밀했지만 이제는 아파트 바로 옆 호수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요즘 아파트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파고들 틈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영복 선생이 내놓았다고 알려진 층간 소음에 관한 해법이 큰 관심과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신영복 선생의 해법에 따르면,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 때문에 시끄러우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애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좀 낫단다.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러우니까’가 선생의 지론이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층간 소음은 물리적인 소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소음은 공동주택의 구조를 뜯어고치거나 보강해야 해결할 수 있지만 이는 비용 등의 문제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 앞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마음의 층간 소음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자는 얘기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갈등 해법의 출발이다.
같은 공간에 사는 이웃간에도 이렇게 소통과 정이 부족한데 낯선 이의 방문에 심하게 경계를 하고 만남 자체를 거절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물론 높아진 사생활 보호의식과 치안에 대한 불안이 이런 현상을 더욱 만연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우유, 음식, 신문 배달원들의 승강기 사용을 제한해 크게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주민들의 불편과 승강기 유지비용 때문이라고 하는데 특히 한 여름 폭염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 못하고 수 십층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필자가 근무하는 통계청에서 각 가구를 방문해 통계조사를 하고 있는 조사원들도 두드려도 대답 이 없고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고생을 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 있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가구나 사업체를 방문해 통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개에 물리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통계조사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일비재한 응답거절과 문전박대로 인한 마음의 상처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정보 보호의식의 강화가 현장 조사의 어려움을 점점 더 심화시키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1일부터 15일까지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는 인구, 가구, 주택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주요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국가기본통계조사이다. 1925년부터 실시된 인구주택총조사가 올해 90년 만에 조사방식이 크게 변경되었다. 지금까지는 통계조사원들이 전국의 모든 가구를 일일이 방문하는 현장 전수조사를 해왔다. 올해부터는 정부가 보유한 주민등록부, 건축물대장, 사회보험명부 등 행정 자료 24종을 이용하여 인구, 가구, 주택에 대한 기본항목에 관한 전수조사를 수행하는 등록센서스로 바뀌었다. 다만 행정기관 자료로 알기 어려운 사회변화상에 대한 항목에 대해서는 전체가구의 20%인 약 400만 가구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다.
등록센서스는 사생활 보호 의식의 강화로 인한 응답거부 등의 이유로 네덜란드 등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진 조사방식이다.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는 등록센서스를 실시하는 경우가 드문데 우리는 정보통신 강국에 걸맞게 잘 구축된 공공행정 데이터와 통계청의 선진 통계작성능력에 힘입어 7년 여의 준비 끝에 올해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 등록센서스의 도입으로 통계조사원 수가 과거 10만여 명에서 4만4000명으로 줄고, 조사 비용도 약 1400억 원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조사를 받지 않는 국민들에게 조사시간 30분씩을 돌려줄 수 있게 된 것도 등록센서스의 도입의 또 다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조사방식이 선진적인 등록센서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4만 4천여명의 조사원들은 20%의 표본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조사를 진행해야 하고 이들에게는 굳게 닫힌 문과 응답 거절 및 회피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 있다. 조사 거절의 이유 중 하나가 응답내용의 유출에 대한 우려다. 하지만 조사 내용은 '통계법 제33조'에 따라 엄격히 비밀이 보장되어 외부에 누설되지 않으며, 통계 생산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므로 안심해도 된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소중한 응답은 통계정보로 바뀌어 조사대상은 물론 국민 모두를 위한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선순환 효과도 창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13장 1장과 2절에 따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피를 나눈 가까운 형제는 사랑하기가 쉽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접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층간 소음을 일으킨 위층의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이름을 물어보는 것처럼 이번 인구주택총조사를 위해 방문한 조사원에게 문턱을 조금 낮춰 따뜻하게 맞아주는 참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조사원증에 적혀 있는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조사원은 나그네에서 우리의 이웃이 될 것이다.
강창익 통계청 조사관리국장
[평신도칼럼]인구센서스 조사원을 이웃처럼 따뜻하게
입력 2015-11-03 15:13 수정 2015-11-03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