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전 영국총리, 이라크전 불법성 경고 보고서 은폐 의혹

입력 2015-11-02 15:31

2003년 이라크전 개전을 앞두고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 내에서 이라크전의 불법성을 경고한 보고서가 나왔으나 보고서를 ‘태워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등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데일리메일 일요판과 텔레그래프, 가디언 등 영국 신문들은 익명을 요구한 당시 총리실 관계자를 인용해 1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데일리메일 일요판과 인터뷰에서 이라크전 발발 직전 피터 골드스미스 당시 법무장관이 이라크전의 불법성을 지적한 보고서를 올렸다고 말했다.

골드스미스 전 장관은 13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유엔의 지지를 얻지 못한 이라크전이 국제법에 위배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정부의 핵심 각료들 사이에서만 회람됐으며 곧이어 이들에게 ‘보고서를 태워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이 관계자는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공개된 적이 없다.

이 관계자는 “전쟁 개시 예상 날짜가 이미 정해졌는데 골드스미스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하자 대혼란이 빚어졌다”며 “그들은 (보고서를) ‘태워서 없애버려라. 법무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골드스미스 전 장관은 실제로 그 열흘가량 뒤에 펴낸 한쪽 분량의 또 다른 보고서에서는 이라크전이 합법이라는 법적 해석을 내놓았고 이 두 번째 보고서는 의회에 제출돼 이라크전 참전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였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 같은 보도 내용과 관련 블레어 전 총리 측 대변인은 “블레어 전 총리가 그 보고서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은 터무니 없는 소리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런 보고서를 없애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일 것”이라고 부인했다.

블레어 전 총리 측은 이어 “블레어 전 총리와 골드스미스 전 장관은 당시 이라크전과 관련한 조언을 둘러싸고 모든 상황을 다루고 준비했다”며 “조언은 이라크전이 합법적이라는 내용이었으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제시됐다”고 해명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