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 관련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종 반대 의견을 담은 행정예고 의견서가 2일 공표됐다. 한국 사회를 양분한 국정화 관련 논의에서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집대성한 버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의견서는 정부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여당 주장대로 현행 검인정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백지상태에서 새로 논의할 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교과서 문제 대신 산적한 현안을 다루자는 의견도 나왔다. 결국 수일내 확정 강행될 고시 절차를 지금이라도 중단해 달라는 요구다.
새정치연합의 여섯 가지 반대 사유 중 첫 번째는 “다수 국민과 학계가 반대하고 있다”이다. 한국갤럽의 국정화 관련 반대(49%)가 찬성(36%)보다 월등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역사학계의 집필거부 선언 흐름도 소개했다. 이어 야당은 “역사왜곡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실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론화 과정이 현저히 부족했고, 추진 과정서 편법이 난무했다” “세계적 규범 및 추세와 맞지 않다” “검정교과서에 대한 검증을 주장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았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다음은 야당이 낸 의견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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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역사, 고교 한국사 교과용도서
구분(안) 행정예고 의견서
2015.11.2(월)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
1) 예고사항에 대한 의견 : 반대
□ 사유
다수 국민과 학계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 국민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10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27~29일 조사)를 보면, 반대 49% 찬성 36%로 반대가 13% 높았습니다. 반대의견은 10월 2주(42%), 3주(47%), 4주(49%)로 행정예고 이후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타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 역사학계의 절대 다수도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는 10월 30일 서울대에서 ‘전국역사학대회’를 열고 참가한 28개 역사학회가 ‘국정화 반대 공동 성명’ 을 발표했습니다. 전국 대학의 역사학과 관련 교수들이 집필 거부를 선언한 바 있고 심지어 집필기준 시안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들마저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 김태년 의원이 지난 9월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중 고교 사회과 교사 2만 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반대한다고 답한 바 있으며, 경기도교육연구원이 10월 14일 도내 역사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91.6%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사왜곡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쓰여 지지 않은 교과서’임을 정부여당은 강조하고 있지만 집필자들은 ‘2015 역사과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교과서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교육부장관이 고시한 ‘2015 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변경해 국가 수립이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이 아닌 1948년으로 규정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는 반 헌법적인 내용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 국정교과서의 저작권은 정부가 갖습니다. 집필자들이 원고 작성 이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해당 시기의 정부가 얼마든지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총리는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과거 국정교과서의 경우, 필자들 의지와 상관없이 당시 문교부가 원고를 마음대로 수정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1979년 유신 때 국정교과서는 ‘5 16 혁명공약’ 중 불리한 조항을 삭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조항으로 바꿔 서술한 바 있습니다.
-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이 6학년 1학기에 사용할 국정 사회 교과서(5-2) 실험본에서도 역사왜곡 우려는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의병 학살을 ‘토벌’로 쌀 수탈을 ‘수출’과 같이 일본 시각에서 서술된 표현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이처럼 친일적 성격이 강한 서술은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극찬했던 대안교과서(2008년), 2,261건의 오류가 발견됐던 교학사 교과서(2013년) 등은 식민지근대화론을 공식화하고 친일을 미화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 근현대사 비중을 축소하는 것도 역사왜곡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필기준 시안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축소하기로 계획했으나 최종 검토 과정에서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늘리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합니다.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근현대사 비중을 대폭 줄인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도한 취사선택이 이뤄지고 “쓰고 싶은 역사만 쓰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부실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 만약 국정화가 확정 고시된다면, 2017년 3월 이전 교과서를 배포하기까지는 16개월 정도가 남았습니다. 같은 2017년 3월 배포 예정인 초등 1, 2학년 국정교과서는 이미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교과용도서심의회’를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편찬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통상적으로 교과서 편찬 기간이 2년이었음을 감안하면 남은 기간 동안 양질의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국사편찬위원회 65년사>에도 “국정 도서의 경우 그 개발에는 편찬계획의 수립에서부터 집필, 현장검증, 수정, 보완까지 총 2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학계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는 우수한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균형 있고 질 높은 교과서 개발’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와 역사교사 절대 다수가 집필 거부를 선언한 상황에서 우수한 전문가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집필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허언에 불과합니다.
- 지나치게 짧은 검토기간도 문제입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대로라면 집필이 2016년 11월 말까지이고 교과서 감수 및 현장 적합성 검토가 12월 한 달 정도로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검토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기간입니다.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은 초등학교 1~2학년군 국정도서의 경우에도 2016년 3월부터 7월까지 ‘현장적합성 검토’를 시작으로 ‘전문기관 감수’ 등 1년여에 걸친 검토 기간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등 역사교과서의 경우 집필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검토 기간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정이 짜여 있어 문제가 있더라도 수정 보완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논란과 부실 편찬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공론화 과정이 현저히 부족했고, 추진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했습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을 하는 자세는 볼통 그 자체였습니다. 법령으로 정해져 있는 공식적인 의견수렴조차 피하기 바빴습니다. 우선 ‘행정절차법 시행령’에 규정(제24조의2 제1항)되어 있는 ‘관계기관 의견수렴 의무조항’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는 제3항에 규정되어 있는 “당해 정책·제도 및 계획의 내용이 의견을 듣기에 곤란한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의견을 듣지 아니하고 행정예고를 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왜 의견을 듣기에 곤란한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행정절차법’과 동법 시행령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행정예고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박근혜정부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타 부처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자우편’을 통한 의견수렴을 국회에서 직접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육부는 이전에 진행된 ‘입법예고’와 ‘행정예고’에서 의무화 되어 있는 의견제출자에 대한 답변 통지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울러,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그 어떤 사안보다도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청회조차 개최하지 않아 사실상 국민 의견 수렴을 진행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 국정 관련 예산을 예비비에서 사용한 것도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국가재정법’상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에 충당’(제22조)하도록 규정되어 있음에도 박근혜정부는 10월 13일 행정예고 직후 국무회의에서 국정 관련 예산을 예비비로 사용할 것을 은밀하게 결정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현재까지 교육부 장관이 기재부에 제출한 명세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으며, '국정화 예비비' 중 교육부가 사용하고 있는 27억 원의 상세 내역 공개 요구에 대해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나 메르스사태 때 예비비 상세 내역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예비비 편성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업의 시급성과 연내 집행가능성이 충족돼야 한다"고 우회적인 비판 의견을 제출했고, 국회예산정책처는 역사과 국정교과서 예산을 추계한 결과, 6억 5천만 원 가량이 소요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즉, 박근혜정부는 국정화에 대한 정당성을 억지로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홍보예산으로 국민혈세를 사용하고 있고, 이는 예비비 사용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국가재정법’의 취지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박근혜정부는 교육부 소관기관인 국립국제교육원에 ‘국정화비밀TF’를 운영하다 야당 교문위원들에게 들킨 이후 ‘역사교육지원팀’을 확대했다고 변명한 바 있습니다. 충북대 사무국장이 정식 발령도 받지 않은 채 ‘교육개혁 추진 점검지원’이라는 허위 사유를 대학에 제출하고 단장으로 활동하고, ‘BH 일일 점검회의 지원’이라는 구체적인 업무분장으로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박근혜정부는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적 규범 및 추세와도 맞지 않습니다
- UN의 ‘파리다 샤히드’ 특별조사관은 2013년 유엔 총회와 2014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의 특별조사관의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바람직한 역사교육에 관한 국제사회의 ‘모범답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다양한 시각과 논쟁의 공간을 수축시켜 학생들이 자신들 나라, 지역, 또는 세계의 복잡한 사건의 미묘한 뉘앙스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제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국정교과서를 ‘지양’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주도의 단일한 역사교육은 특정한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도구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역사교육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 교과서 발행 체제에 있어 대다수의 선진국은 검인정이나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베트남은 유엔의 국정화 폐지 권고 이후 국정에서 검정으로의 전환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검정교과서에 대한 검증을 일방적인 주장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았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발언 한 바 있습니다. 이대로만 하면 됩니다.
- 그러나 정부여당은 검정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계의 전문적 검증이 아닌 근거 없는 색깔론 제기로만 일관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면 학계에 검증을 의뢰하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제기했어야 하지만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교육부가 일방적 편집을 통해 자료로 뒷받침하는 식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 이미 교육부가 일차적으로 주장했던 교과서의 문제점들이 현행 교과서에는 기술되지 않았음이 증명됐고, 국사편찬위원장도 국회에서 부분적으로 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또한 검정교과서 내용이 시정 되지 않고 있어 국정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9월 27일 취임해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3년 9월 26일까지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정 심사가 일단 끝났을 때도 청와대 수석실에서 한 부를 가져가서 열흘간 검토했다"며 "좌편향 내용을 많이 담은 책은 객관적으로 볼 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 지금이라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제기하고 있는 검정교과서 문제점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공론화를 진행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받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특히 학계의 절대 다수가 좌파라는 식의 비이성적인 색깔론 공격을 중단하고 비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의견이 마치 사실인 듯 유통시키는 행위도 중단해야 합니다.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
- 정부여당이 현행 검인정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새로운 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등 전문가들과 교육주체들이 두루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발행체제 전반을 검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현행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충분히 검증하고, 검인정 제도를 발전시킬 방안과 대안을 검토했으면 합니다.
- 대신,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일단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 사회적 논의기구 결과에 따르는 것을 전제로 그때까지 정치권은 교과서 문제 대신 산적한 민생현안을 다루는 데 전념하자는 취지입니다.
- 지금까지도 역사교과서 문제로 인해 수많은 민생 교육 현안이 묻혀 많은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을 일차적으로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여당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의 가감 없는 토론과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지금의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고시 절차 중단을 재차 촉구합니다.
<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전문] “이래서 국정교과서 반대” 野의 최종버전 6불가론
입력 2015-11-02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