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식재료인 개에 링거라니”…한 가족을 바꿔놓은 그 녀석

입력 2015-11-02 00:02
온 가족이 강아지의 생일잔치를 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강아지가 자기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을 감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개라면 질색하고 무서워하는 아내와 개는 단지 식재료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반려견을 키우는 자세가 많은 누리꾼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처음 반려견을 키우는 부부의 사연이 다수의 사진 및 장문의 글과 함께 공개됐다.

글을 쓴 A씨는 부부가 처음 반려견을 만난 것은 2006년 말이었던 것 같다며 운을 뗐다.

한번도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키울 거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신혼 부부는 어느 날 좀 비리비리해 보이지만 정말 귀여운 순종 요크셔테리어(나중에 잡종으로 밝혀짐)를 분양했다.

그런데 온 지 이틀 만에 이상한 변을 싸고 3일 만에 녹변을 봐 동물병원에 난생 처음 갔다.

강아지의 병명은 ‘파보장염’이었고 코로나장염까지 왔다.

태어난 지 두달 남짓이라 이건 100% 죽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탈수가 걱정돼 링거를 맞추고 입원을 시켰다. 하루 7만원이라고 했다.

자문을 해보니 개를 교환하면 된다고 했다. 돌려보내면 환불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하니 “돌려주면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냥 똥투성이 케이지에서 치료도 안해주고 죽을 때까지 방치한대”라고 말했다.

그냥 강아지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A씨는 살려보자고 마음먹고 병원에 전화했다.

“다 해주세요.”

아내와 퇴근 후 병원을 찾았다. 아내는 링거가 빠지지 말라고 소시지만큼 큰 붕대를 감아 놓은 모습을 보고 1시간 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

A씨는 ‘식재료에 링거라니…’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A씨가 아내에게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라고 묻자 “몰라. 근데 포기할 수 있을까? 난… 천만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A씨는 결심했다. “그래 그럼 천만원까지만 쓰자.”

은행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던 신혼부부가 결혼 후 가장 큰 돈을 3일 키운 개에게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낮에는 당시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하는 처제가 병원에 상주하고 저녁에는 부부가 병원 문 닫을 때까지 지켰다.

부부는 입원 케이지에서 꺼내 계속 무릎에 안고 있었다.

의사선생님 3명이 24시간 집중케어를 해준 덕분에 강아지는 건강해졌다.

치료비는 생각보다 적게 나와 250만원 남짓 나왔다.

그리고 강아지는 웬만한 족보 있는 개보다 비싼 몸이 됐고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신경 쓰이는 놈이 됐다.

‘살아만 다오’란 심경이었기 때문에 전혀 사회화 교육도 못시켰다.

그래서 대소변도 못 가리고 밥도 막 먹는다. 가재도구, 문짝도 다 뜯어 먹었다.

의사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입원한 기억이 죽을 때까지 식탐으로 나타날 수 있어 못 고칠 거라고 했다.

강아지가 건강을 되찾자 부부의 인생관이 바뀌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아프고 배고픈 사람들을 보면, 사회적인 문제에 내가 왜 도와야하냐, 시스템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배고픈 사람 못 참고, 아픈 사람 못 참고, 힘든 사람 보면 못 참게 됐다.

강아지에게 수백만원 쓰는 사람이 왜 사람에게 돈 못 쓰냐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라도 그렇단다.

마지막으로 A씨는 “강아지 한 마리에게서 시작됐지만 이제 나와 내 가족 모두를 바꾸게 됐다”며 “내 인생 중 가장 잘 한 선택 top 3안에 들어간다. 그 녀석과 얽힌 게”라고 마무리했다.

이를 본 많은 누리꾼들은 “입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아이에게 천만원까지 써보자고 하는 글쓴님과 글쓴님 아내분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강아지가 진짜 행복해보여요!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게 사시길” “좋은 일 많이 하시는 걸 보니 제가 더 부끄러워지네요”란 반응을 보이며 찬사가 이어졌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