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염병... 시로저리가” 진화하는 국정화반대가

입력 2015-11-01 15:40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박근혜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대학가 대자보가 진화 중이다. 지난달 서울 대학가를 강타한 북한식 ‘로동신문’ 어투 대자보에 이어 이번엔 고졸한 한문투의 글이 부산지역 대학가에 등장해 1일 온라인으로 확산됐다. ‘친일독재미화 역사왜곡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부산지역 대학생 겨레하나 역사동아리 일동’으로 작성된 글의 제목은 ‘국정화반대가’이다.

이런 한시는 뜻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음을 읽는 게 묘미다.

“건국가사학교/ 부국염병하내/ 민사불지랄/ 시로저리가”

둘째 줄과 셋째 줄에서 아니 불(不)자의 음독 법칙과 어긋난 표기가 발견되는데,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아니 ‘불’자는 ‘ㄷ’과 ‘ㅈ’으로 시작되는 음절 앞에선 ‘부’로 발음한다.

첫줄은 세울 ‘건(建)’ 자를 동사로 활용했다. ‘나랏일을 가정사로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 한다’는 뜻이라고 나온다. 박정희 정권의 공과가 새로 쓰일 교과서에서 현대사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친일과 독재의 기억을 간직한 현 대통령 부친의 역할을 좀더 긍정적으로 그려보려는 노력을 ‘가정사’로 해석했다. 헌정 사상 첫 대를 이은 부녀 대통령을 당선시킨 영광에 가려져 있던 그늘이다.

둘째 줄은 ‘염병’이 핵심이다. 우리가 아는 염병(染病), 즉 장티푸스 등의 역병을 뜻하는 염병이 아니라 편안할 ‘염’에 불꽃 ‘병’자를 썼다. ‘나라를 편안케 밝게 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꾸짖는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부국’도 원래는 ‘불국’으로 읽어야 하지만, 부국강병에서의 부국을 연상시키기 위해 읽기 법칙에서 의도적 파행을 가져온 듯 하다.

셋째 줄과 넷째 줄은 갑자기 오언절구의 절반 분량으로 돌아왔다. ‘민사불지랄’ 역시 ‘민사부지랄’로 읽어야 맞지만,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한 오기로 보인다. ‘백성의 역사를 어지럽히는 것을 그치지 않으면’이라고 작자는 해석했다. 이어 ‘시로저리가’에선 큰 물결 ‘로’자를 이용해 성난 민심이 곧 요동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글에 참여한 역사동아리는 부산에 자리한 동아대 동명대 동의대 신라대 부산교육대 부산외국어대 부산대 등이다.

앞서 지난달 19일 서울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는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란 노동신문 글자체 글이 등장해 파란을 낳았다. 곧이어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고등중학교 력사교과서 국정화는 우리공화국 인민의 시종일관한 립장’이란 성명이 올라와 맥락을 모르는 구세대에게 뜬금없이 종북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