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꼭 맞게 재단된 수트. 포마드를 잔뜩 발라 넘긴 헤어스타일. 날렵한 몸놀림과 번쩍이는 안광이 무색한 능청스러운 성격.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첨단 신무기를 단단히 틀어쥔 손까지. 수많은 스파이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나폴레옹 솔로가 10월 29일 개봉한 ‘맨 프롬 엉클’에서 부활했습니다.
‘맨 프롬 엉클’은 동명의 TV 시리즈를 원작으로 합니다. ‘엉클’은 ‘국제스파이본부’라는 가상의 조직을 뜻하죠. 배경 역시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을 벌이던 냉전 시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으로도 고전적 이미지의 배우들이 캐스팅됐습니다. 5대 ‘007’ 피어스 브로스넌을 연상시키는 전형적 미남 헨리 카빌이 나폴레옹 솔로를, 금발과 깊고 푸른 눈이 동구권 스파이의 느낌을 주는 아미 해머가 일리야 쿠리아킨 역을 맡았죠.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삐걱댑니다. CIA 소속인 솔로와 KGB 요원 쿠리아킨은 혁신적인 핵무기 제조 기술을 보유해 히틀러로부터 사랑받았던 우도 텔러 박사를 동시에 찾고 있습니다. 우도 텔러를 잡기 위해 그의 딸 가비 텔러(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먼저 찾아갔죠. 쿠리아킨은 한 발 먼저 가비를 데려간 솔로를 쫓죠. 마치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총성과 함께 속도감 넘치는 카체이싱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솔로와 가비는 빈티지 와트버그 세단, 쿠리아킨은 옛 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를 탔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자동차들이 불꽃을 튀기며 추격을 벌이는 모습이 화면 가득 잡히죠.
결국 쿠리아킨은 솔로를 놓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재회합니다. 텔러 박사가 로마의 최상류층 알렉산더(루카 칼바니)·빅토리아(엘리자베스 데비키) 커플 밑에서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CIA와 KGB가 손을 잡기로 했기 때문이죠. 그 때부터 지나치게 자유로운 솔로와 과하게 규칙에 사로잡힌 쿠리아킨의 위험한 동행이 시작됩니다.
영화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남남 케미’와 스타일리시한 액션으로 고전을 유연하게 해석한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이어서인지, ‘맨 프롬 엉클’에서도 같은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출신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전혀 맞지 않는 솔로와 쿠리아킨이 공동의 목표를 통해 동료애를 키워나가는 과정은 전형적이지만 상당히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또 상기한 카체이싱 장면을 포함해 항구에서 벌어진 코믹한 액션 장면, 4륜 오토바이가 등장하는 초호화 추격신이야말로 감독의 감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죠.
이야기를 들여다 봤을 때는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두 스파이와 협력한 가비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들쭉날쭉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솔로와 쿠리아킨 사이를 묘한 느낌으로 오고 가며 긴장감을 북돋는 역할이지만, 영화 안에서 그의 행동은 너무 과하게 표현됐다는 인상입니다. 이를테면 가비가 가짜 약혼자 쿠리아킨과 호텔방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요. 가비가 그렇게까지 그를 미워해야 할 이유는 영화 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스타일에 치중해 무의미하게 멋을 부린 장면들도 종종 목격됩니다. 멀쩡히 흘러가고 있던 이야기에 의도적 공백을 두고 그 자리에 음악을 넣는 연출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그 공백은 플래시백으로 이야기를 되돌려서 다시 그 부분을 메우는 방식으로 채우는데요. 불필요한 반복이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프롬 엉클’은 ‘반드시 크게 볼 것’을 권합니다. 헨리 카빌과 아미 해머의 기막힌 비주얼과 숨막히는 액션들이 영화의 단점들을 날려 버릴 정도로 탁월하기 때문이죠. 특히 영화 속 주요 장면들이 유독 타이트하게 촬영됐는데요. 이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아이맥스나 M2, 수퍼플렉스 등 큰 화면으로 볼 것을 권합니다만,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앞자리를 고수한다면 일반관에서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듯합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맨 프롬 엉클’, 반드시 크게 볼 것!
입력 2015-11-01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