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검은 사제들’, 박소담의 ‘그녀 목소리’

입력 2015-10-31 17:13

배우 박소담을 처음 만났던 것은 지난 7월, 영화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 관련 인터뷰 때였습니다. 긴 갈색머리를 아래로 묶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발을 쓰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검은 사제들’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여고생 역을 맡아 삭발을 감행했던 탓이었죠. 그 때부터 ‘검은 사제들’ 속 박소담의 변신이 궁금했습니다.

지난 28일 ‘검은 사제들’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박소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소담이 맡은 ‘영신’은 불의의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을 겪게 되는 역할인데요. 이야기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운 채로 보내야 합니다. 가끔은 사지를 결박당하기도 하죠. 다른 작품에서보다도 영신을 연기할 때는 작은 몸짓이나 표정, 대사를 읊는 방식을 더욱 신경써야 했을 것입니다. 움직임이 최소화된 배역에서는 이 같은 디테일이 역할 소화도를 가늠하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사실 영신이라는 캐릭터는 새롭지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 ‘엑소시스트’의 레건(린다 블레어)를 능가할 수 있는 인물은 드물겠죠. 레건을 원형으로 한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인물들도 적지 않습니다. 박소담은 이처럼 전형성이 큰 인물을 ‘정석대로’ 연기했습니다. 이때 박소담이 영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해 준 것이 바로 그의 목소리입니다.

박소담은 ‘검은 사제들’에서 우리말을 비롯해 라틴어, 중국어, 영어로 된 대사를 한 호흡으로 내뱉어야 했습니다. 외우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을 텐데, 정확한 발음은 물론이고 언어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목소리가 놀라웠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지난 1994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공포 드라마 ‘M’ 속 심은하의 음성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각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덧입혔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영화 시사 이후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박소담은 이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였다고 밝혔습니다. 스스로도 놀랐다나요.

7월의 인터뷰가 또 한 번 상기됐습니다. 박소담은 당시 낮은 목소리를 자신의 매력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실제로 그의 말씨와 목소리는 ‘또박또박’ ‘조근조근’이라는 의태어들을 떠오르게 했죠. 지난 8월 KBS 2TV ‘붉은달’의 화완옹주로 분했을 때도 박소담의 목소리는 기품 있고 당찬 역할을 소화하는 데 주효했습니다.

그의 음성은 낮지만 굵지 않아 차분한 느낌과 동시에 진폭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렷한 발음이 주는 장점을 극대화시키기도 하죠. 도화지 같은 얼굴 만큼 여러 역할에 어울릴 만한 목소리입니다. 노래까지 잘 한다는 소문이 도니, 목소리는 박소담의 분명한 무기인 듯하네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