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변태(연우소극장·10.1∼12.31·연출 최원석)가 장기공연에 돌입했다.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는 연극 ‘변태’(變態)의 의미는 변:태(탈바꿈), ‘변화여 달라진 상태’로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변태’다. 지난해 서울연극인 대상에서 대상, 연기상, 극작 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12월까지 공연되는 장기공연에서는 배우들이 세 팀으로 교체되면서 연극 변태의 색다른 맛을 이어간다. 세 배우(김귀선·장용철·조정민 )가 끄는 힘이 탄탄하다. 연극변태는 배우들의 밀도 있는 감정이 엉켜져 극의 균형을 이루고 감정은 매섭다.
지식인과 민중의 사회의 몰락
무대공간은 헌책으로 삶의 선을 형성하고 이어짐은 철저하게 현실과 고립된 지식인의 삶을 상징한다. 시인의 삶과 현실세계는 철저하게 고립되고 닫혀있다. 도서 대여점 ‘책사랑’을 동네에서 운영하는 것은 시인 민효석(장용철 분)과 글짓기와 독서 지도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그의 아내 한소영(조정민 분)이다.
책으로 엉켜있는 무대는 현실사회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지식인의 내면을 그려낸다. 도서 대여점은 지식인 민효석과 아내 한소영의 삶의 공간이다. 무대 우측 편으로 컴퓨터가 놓여 있는 작은 간이 방이다. 현실에 적응을 못한 채 변태적인 욕망의 내면이 투영된다.
책으로 덥혀 있는 무대. 종이에 향에서 올라오는 지식의 날카로움은 시대를 마주하고 내면에서 흐르는 강렬함은 헌책처럼 기운을 잃어간다. 민중을 날카로운 정신으로 무장시킨 언어의 집합체이자 잘려나간 현재 삶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시의 언어로 역사의 한 복판에서 터져 나온 얼룩진 현상을 칼날처럼 베어낸 지식인의 내면은 부재한다.
거대한 자본의 현실사회에는 시(詩)는 노쇠한 언어가 된다. 날카로움의 언어로 시대를 베어낸 언어는 죽어가고 상품의 언어만 존재한다. 시인(민효석)으로써 욕망은 현실로 용해되지 못한 채 관념과 이상(理想)의 언어로만 존재되는 현실의 우울함을 들어낸다.
시인의 내면은 현실에 박재된다. 자본사회는 언어의 날카로움도 집어 삼킨다. 지식의 언어는 현실의 절망 속에 닫쳐져 죽어가는 언어가 된다.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인의 언어는 자본사회로 무장해제 되고 철저한 상품이 된다. 민중의 내면을 강타했던 지식인 민효석의 진실의 언어는 현실에 고립되고 의식은 관념으로만 존재된다. 자본의 탐욕을 시의 언어로 대체 하지 못한 극중 인물 민효석은 절망의 사회다.
망해버린 책사랑 도여 대여점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연출은 절망의 시선으로 도서대여점을 바라본다. 쌓여져 가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유지시키는 것은 자본의 줄기다. 시인이 되기 위해 민효석에게 시를 배우러오는 정육점 사장 오동탁(김귀선 분)이다. 아버지를 통해 대대로 고기를 썰고 칼을 갈며 고기의 살점들을 덜어내며 부(富)를 이뤘다.
오동탁은 자본가의 욕망으로 중첩되고 상징화 된다. 고기의 살점들을 썰며 자본의 두께를 쌓아 올려온 오통탁은 자본의 욕망과 탐욕이 교차된다. 고기를 썰며 일궈온 자본가의 욕망에서 자라나는 시인의 갈증은 삶의 간판을 만드는 도구이며, 신분상승의 재료다.
시인의 진실은 현실 속에 함몰되는 절망의 사회다. 오동탁의 자본탐욕이 언어의 날카로움을 대체하는 사회다. 소영은 효석을 현실로 일으켜 세운다. 동탁에게 부탁해 돈을 벌기위해 현실에 적응해 가지만 버틸 수 없다. 민중사회는 자본의 탐욕으로 용해되고 내면은 무장해제 된다.
연극은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고립되어 가는 민효석의 삶을 바라본다. 시대정신은 함몰되고 철저하게 자본화 되어 있는 현실로 용해되는 인간만이 숨을 쉬며 살아 갈수 있다. 대한민국의 물줄기에서 튀어 올라온 아픔의 파도를 절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대정신으로 무장해 민중들의 의식과 삶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지식인과 민중은, 시대역사에 걸려있다. 민중과 지식인의 전류는 혈전되어 있다.
오동탁의 ‘고기를 썰며’ 자본의 탐욕으로 썰어지고 분쇄되는 지식인
시인 민효석이 바라보는 오동탁(김귀선 분)이 시 ‘고기를 썰며’는 시의 언어로 가치가 없는 쓰레기다. 고기의 살점을 썰며 부를 일궈온 동탁은 그의 예명 ‘돌쇠’로 존재한다. 시대정신이 장착되지 못한 시의 언어는 죽어있고, 가벼움만이 숨을 쉰다. 동탁이 살아가는 시대는 가벼움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극은, 동탁을 통해 삶의 반전을 시도한다. 시대에 가치 있는 언어만 시집으로 출간을 해온 출판사 ‘천년의 시작에서는 동탁의 ‘고기를 썰며’ 시집을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오통탁의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시인보다 더 시인다운 현실성을 보인다. 독자는 ‘고기를 썰며’ 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자본의 탐욕에 내면의 피부를 부착한 소영은, 도여 대여점이 폐업한 뒤 오통탁의 자본의 탐욕에 내면의 피부를 부착한다. 폐업한 도서대여점 책들은 1㎏ 백 원이다. 소영은 효석을 향해 “여기 있는 이 책들 다 네가 쌓아놓은 똥이야. 똥, 똥! 네 똥을 1㎏에 백 원 씩이나 주고 산다는 거야. 이 바보 같은 새끼야 아직도 모르겠어!” 를 외친다.
동탁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돌쇠 문학회’를 이끈다. 삶에 외형이 필요한 오동탁은 도서대여점 책들을 삶에 장식으로 구입한다. 3막2장에서 소영은 거대한 자본의 피부를 향해 속살을 벗는다. 성관계 후 소영의 몸을 닦아내는 휴지는 책 ‘민중과 지식인’의 종이다.
민중과 지식인은 자본의 탐욕으로 용해되고 분비물을 닦아내는 휴지다. 연출은 동탁과 소영의 격렬한 장면을 통해 지식인과 민중사회를 거대한 자본의 탐욕으로 빨려가는 현실로 절망의 시선을 들어낸다. 소영에게 지식인과 민중의 생명은 자본의 피부로 부착된 삶만이 가능 할 수 있다는 태도다. 날카로운 언어는 죽어 있고 고기를 썰어가며 자본의 살점으로 피부를 이식한 언어와 삶만이 살아갈 수 있다.
언어의 날카로움으로 민중의 내면을 일으켜 세워왔던 시인은 삶은 철저하게 현실과 고립된 삶이다. 시대정신은 정치로 무장되고, 시인의 언어는 자본의 탐욕에 죽어가고 삼켜진다. 민중은 오통탁의 ‘고기를 썰며’ 시 구절에 환호하는 사회다.
소영처럼 동탁의 자본의 피로 내면과 피부를 이식시켰을 때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고립되는 효석은 절망의 삶이다. 시집의 종이로만 박재되어 있는 언어다.
배우들의 강한 에너지도 극의 밀도를 높인다. 배우 김귀선은 강렬한 숨소리로 돌쇠 오동탁으로 무장하고, 배우 정용철은 균형 있는 연기로 시인 민효석의 내면을 그려놓는다. 한소영(조정민 분)이 마지막 장면에서 ‘지식인과 민중’의 책에서 떨어져 나온 종이로 몸을 씻겨내는 장면은 ‘변화여 달라진 상태’ 로 살아가는 섬뜩한 오늘이다.
자본의 피부로 이식시켜 현실에 적응하는 한소영.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시인 민효석. 돌쇠처럼 고기의 살점을 썰며 자본의 거대함으로 진실의 언어를 삶의 상품의 언어로 만들어낸 오동탁. 절망과 붕괴의 시선으로 ‘변태’를 바라보는 우리는, 누구와 닮아 있나?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
[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24. 민중과 지식인의 몰락 연극 ‘변태’(變態)
입력 2015-10-29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