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병원보다는 하늘나라에 갈래요”

입력 2015-10-28 16:49 수정 2015-10-28 17:26
어머니 미셸의 병간호를 받고 있는 줄리아나 (출처: CNN 홈페이지)
오빠 알렉스와 줄리아나 (출처: CNN 홈페이지)
“다시 아프게 되면, 병원에 갈 거야 아니면 집에 있을 거야?”
“병원에는 안 갈 거야.”
“집에 있으면 하늘나라 가게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응.”
“엄마 아빠가 너 바로 뒤따라서 못가는 거 알지? 혼자 먼저 가 있어야 돼.”
“걱정 마. 하나님이 나 돌봐줄 거야.”
“병원에 가면, 병 낫고 난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엄마 아빠랑 더 시간 보낼 수 있어. 우리 딸이 그거 확실히 이해해야 돼. 병원에 있으면 엄마 아빠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어.”
“이해해.”
“(흐느끼며) 미안해 우리 딸. 엄마 우는 거 우리 딸이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너무 보고 싶을 거 같아서 그래.”
“괜찮아 엄마. 하나님이 나 돌봐줄 거야. 내 맘 속에 계시거든.”

다섯 살 소녀 줄리아나는 ‘샤리코-마리-투스(CMT·척수성근위축)’라는 희귀불치병을 앓고 있다. 신체 근육이 약화돼 면역이 극도로 취약해지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은 대개 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미국 CNN방송은 27일(현지시간) 생사의 기로에 선 줄리아나의 사연을


‘유리’를 만나기까지

줄리아나의 한국명은 ‘유리’다. 한국인인 줄리아나의 엄마 미셸 문은 어린 시절 미국에 입양돼 자랐다. 성인이 된 뒤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의무장교로 복무하던 미셸은 2004년 자신이 진료를 맡은 부대의 전투기 조종사 스티브 스노를 만났다. 군의관을 믿지 않고 못되게 굴기 마련인 다른 조종사들과 달리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였다.
둘은 2006년 결혼식을 올렸다. 첫째 알렉스를 낳은 2년 뒤인 2010년 8월 25일 줄리아나를 낳았다. 까만 눈동자가 엄마를 빼다 박은 딸이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게 행복했다.


천천히 다가온 비극

웬일인지 아이는 첫돌이 지나서도 제대로 서질 못했다. 의사인 엄마 미셸은 불안에 휩싸였다. 반년 뒤에도 상태가 달라지지 않자 미셸은 딸에게 정밀검진을 받게 했다. 남편이 한국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어 모든 과정을 홀로 견뎌야 했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부모의 유전질환이 딸에게 이어졌다고 했다.
그제야 미셸은 남편의 발이 좀 남다르게 생겼다는 걸 떠올렸다. 남편의 발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운데가 유독 움푹 패여 있었다. 신경유전질환인 CMT 증상이었다. 부분적인 질환에 그친 남편과 달리, 딸의 증세는 좀체 보기 힘든 변종질환이었다.
남편은 2013년 딸을 돌보기 위해 조종사 자리를 그만뒀다. 아빠의 마지막 비행 뒤 퇴역 축하파티가 벌어지던 날 밤, 줄리아나는 독감 증세를 보이며 병원에 실려 갔다. 팔다리 근육에만 나타나던 증상이 호흡기관 근육까지 번진 줄리아나는 얼굴만한 호흡기를 꼽고 지내야 했다.


병원에는 안 갈 거야

1년 전인 지난해 10월, 줄리아나는 병원을 떠나 미국 오리곤주 포틀랜드에 있는 집에 머물기 시작했다. 이제 줄리아나는 홀로 앉거나 걷지 못한다. 도움 없이는 장난감을 손에 쥐는 것조차 버겁다.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근육이 약해져 배에 연결된 관으로 음식을 섭취한다. 당장은 괜찮지만, 다른 사소한 질병 하나라도 걸린다면 죽음을 맞아야 할지 모른다.
미셸 부부는 본래 딸이 다시 병에 걸리면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뒤 계획을 포기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셸은 지난 5월부터 딸의 이름으로 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는 한복을 입고 찍은 줄리아나의 돌 사진을 비롯한 추억과 일상이 담겼다. 미셸은 줄리아나가 퇴원한 지 1년째를 맞은 지난 24일 딸과 보낸 하루를 블로그에 적으며 “더 이상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기도했다고 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