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에겐 시간이 없다...로또상봉 이제 그만” 고령화 심각

입력 2015-10-27 07:58

천륜을 가른 분단의 아픔에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저리게 했던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26일 끝났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상봉으로 이산가족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월은 빠르게 흐르는데 상봉 행사는 띄엄띄엄 열리는 데다 상봉 참여도 '로또'에 가까운 탓에 혈육과 재회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는 이산가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운 좋게 만남의 기회를 잡은 이산가족들도 고령으로 상봉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 방문'으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8·15 계기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합의하면서 지금까지 대면상봉 20회와 화상상봉 7회가 진행됐다.

이번 상봉 행사는 6·15 공동선언 이후 기준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이고,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행사를 포함하면 21번째 이산상봉이다.

그러나 매번 상봉단 규모가 남북을 합쳐 200가족으로 적어 상봉 기회를 잡는 것은 '로또'에 가까운 실정이다.

상봉 규모는 3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 때문에 당국과 민간 차원의 대면·화상 상봉을 모두 합쳐도 지금껏 헤어진 가족을 만난 사람은 2만5천명이 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상봉행사조차도 남북관계 등 정치적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띄엄띄엄' 이뤄져 이산가족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2차례씩 열렸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08년을 건너뛰고 2009년 열렸다. 2010년 10월 상봉행사 후에는 3년4개월이나 상봉이 중단됐다.

2013년에는 추석 계기 상봉 행사를 나흘 앞두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하면서 이산가족들의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기도 했다.

이때 무산된 상봉 행사는 2014년 2월에야 겨우 다시 열렸다.

첫 상봉 행사가 열렸던 2000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이 됐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6만6천488명이다.

이 중 80대가 42.2%, 90세 이상이 11.7%를 차지하는 등 생존해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53.9%가 80대 이상 고령자다.

여기에 매년 4천여명 꼴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이 사망하면서 끝내 헤어진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 탓에 상봉 행사에서는 부모 자식 간 상봉이나 부부 상봉보다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의 자녀 등 '한 다리 건너' 혈육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 추세다.

운 좋게 상봉 행사에 참가할 수 있게 됐으나 만남을 앞두고 건강 악화로 결국 상봉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생겼다.

단체 버스 대신 구급차를 타고 상봉 장소로 향하거나, 상봉 도중 쓰러지는 고령자들도 있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에 성공해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봉 방식은 오히려 상처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회' 수준으로 만남 시간이 짧은데다가 한번 만난 이후에는 또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상봉에서 이산가족들은 2박3일간 2시간씩 6차례, 총 12시간 동안 혈육을 마주했다.

짧은 만남에 가족들은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거나, 만남 사이사이의 헤어짐에 "어차피 다시 올 건데 왜 데리고 가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2박3일간의 만남 뒤 다시는 소식을 알 수 없다는 사실도 이산가족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상봉 정례화는커녕 서신 교환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가족과 상봉한 이산가족 중에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오히려 만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