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인 혐의 재일동포 무기수 20년만에 재심 결정으로 석방

입력 2015-10-26 15:30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여성 무기수 석방 장면

20년 전 동거녀와 공모해 그의 어린 딸을 방화 살해한 것으로 인정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던 재일동포 박용호(49) 씨가 26일 법원의 재심 및 형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석방됐다고 교도통신,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교도통신의 경우 ‘속보’까지 띄우는 등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박씨와 그의 동거녀였던 아오키 게이코(51)씨는 오사카고법의 지난 23일 결정에 따라 이날 오이타 형무소와 와카야마 형무소에서 각각 석방됐다. 오사카 고법은 오사카 고검의 이의 제기를 기각했다.

박씨는 형무소를 나오며 기자들에게 “아직 현실감이 없다. 경치가 꿈처럼 빛나는 것 같다”고 말했고 아오키씨는 “(사망한) 딸이 푸른 하늘 어디에선가 ‘엄마 잘 됐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사카 고법은 보험금을 노리고 딸(사건 당시 11세)을 방화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이 확정된 아오키씨와 박씨에 대해 재심 및 형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박씨는 아오키씨와 공모해 1995년 7월 22일 저녁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에 있는 집 차고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당시 목욕중이던 아오키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2006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생명보험금 1500만 엔(1억 4000만원)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았다.

박씨가 수사 단계에서 “차고에 가솔린 약 7.3리터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자백한 것이 유죄 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두 피고인은 2009년 “불을 지른 게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가 불이 난 것이고, 강압 수사로 자백을 강요당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방화 재현 실험 결과 박 씨의 최초 자백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오사카 지법(2012년)과 고법은 자연 발화 가능성을 인정하며 잇달아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박씨의 노모가 끈질기게 아들의 무죄를 호소해왔고, 일본 시민들도 오랜 기간 지원활동을 벌여왔다.

일본 법조계는 최근 일련의 재심 사건 판결 흐름에 비춰 박씨 등은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