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새댁이었던 한음전(87) 할머니는 자신 앞에 앉은 남편의 어깨를 찰싹 때리며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사진 하나라도 찍어놓고 가지. 아들한테 아버지라고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었어.” 주름살이 깊게 팬 전규명(86) 할아버지는 미안한 듯 아내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나는 죽어도 이제 원한이 없어.” 부부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는 긴 세월에 서로의 생사마저 모르는 채로 살아야 했던 이산가족이 부둥켜안고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가면서 결혼한 지 2년 만에 한 할머니와 헤어졌다. 당시 아내의 배 속에는 아들 완석(65)씨가 있었다.
흰색 저고리에 자주색 한복 치마를 곱게 입은 한 할머니는 “쟤가 당신 아들이야. 당신 나간 지 석 달 만에 나온 거야”라며 완석씨를 가리켰다. 전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아들에게 “어머니 결혼(재혼)했어?”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완석 씨가 고개를 젓자 전 할아버지는 “그렇게 고왔는데 왜 결혼 안 했어”라며 손을 꼭 마주잡았다.
이날 상봉장에서 이봉진(82) 할아버지는 탁자 위에 과거 사진을 잔뜩 펼쳐놓고는 북측에 두고 온 누나의 아들과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유남(89) 할머니 가족은 남측의 사위가 가져온 디지털카메라로 긴 세월 보지 못한 북측 동생과의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배양효(92)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북측의 아들 상만(65)씨에게 “너 오면 줄려고 (집을) 2000만원 들여서 깨끗이 청소해놨어”라며 꼭 껴안아줬다. 아들은 그 옛날 아버지와 남측의 여동생에게 불러주고 싶었던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했다.
이번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한 2차 남측 방문단은 모두 90가족이다. 이 중 부녀 상봉 5가족, 모자 상봉 4가족, 부자 상봉 2가족, 모녀와 부부 상봉이 각각 한 가족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65년 만에 재회한 부부… “고생했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입력 2015-10-24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