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경찰청은 조희팔 일당의 4조원대 금융 다단계 사기 사건을 설계한 혐의(사기 등)로 수배 7년 만에 붙잡힌 배상혁(44)을 24일 구속했다.
대구지법 김종수 부장판사는 이날 배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7년간 도피 생활을 하고 압수수색 직전에 증거를 은닉한 점 등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배씨는 2004∼2008년 조씨 일당이 전국에서 4조원대 금융 다단계 유사수신 사기 행각을 벌이던 시점에 전산실장을 담당한 핵심 인물이다. 경찰에 따르면 배씨는 조희팔 일당과 공모해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가장한 금융 다단계 사기를 벌여 2조5000억원 상당을 가로챘다. 피해자만 공식적으로 2만4599명에 이른다.
경찰은 배씨가 2008년 10월 31일 대구지방경찰청의 다단계업체 본사 서버 압수수색을 앞두고 전산 기록을 삭제하는 데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경찰 수사가 본격화한 2008년 말 지명수배가 내려진 뒤 7년이 지날 때까지 소재는 물론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재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지난 19일 인터폴에 배씨의 적색 수배 요청을 했다. 곧이어 지난 22일 오후 4시50분쯤 경북 구미시 공단동 한 아파트에서 배씨를 검거했다.
그는 지난 7년간 가족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서울, 경주, 경산, 대전 등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거 당시 휴대전화나 신용카드 등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서울에 사는 아내를 수시로 찾아가 돈을 받아 써 온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배씨의 아내는 최근 중국에서 검거된 조희팔 조직의 2인자 강태용(54)의 여동생이다.
배씨는 장기 수배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을 활보하고 다녔다. 검문검색 등 특별한 제지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미의 낡은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는 점을 빼고는 고급 차량에 낚시, 캠핑 장비를 싣고 다니는 등 유유자적 지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본인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수배 당시 얼굴과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수사 당국이 배씨 등 조희팔 사건 수배자들을 검거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배씨를 상대로 조씨 사건의 돈 흐름과 사용처, 은닉재산, 조희팔 또는 강태용과 접촉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배씨는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조희팔이나 그 일당과 접촉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배씨를 구속한 만큼 피해 규모와 은닉자금 행방 등을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조희팔 ‘다단계 설계자’ 7년 만에 구속
입력 2015-10-24 14:18 수정 2015-10-24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