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23. 이윤택 연출 시(詩)와 연극의 절묘한 조화 ‘백석우화’

입력 2015-10-22 09:31

연극 ‘백석우화’ 우리 소리로 백석 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이윤택 연출이 백석의 시를 들었다. 시인이기도 한 연출이 백석(1912~1996)에 시를 탁월한 연극적 언어로 품고, 극적인 이음새를 만들었다. 백석의 삶을 시로만 묶어 애잔함을 노래한다. 시를 묶어 그의 삶을 투영하고 가슴으로 한편의 백석 평전을 마주시킨다.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다. 평전으로만 삶을 들려다 보는 것으로 시와 시인을 감싸는 온도를 뜨겁게 품을 수 없다. 시가 품고 있는 입체적인 언어도 인간내면으로 흡수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시인이기도 한 이윤택 연출의 천재적인 탁월함은 백석 시에 삶의 강렬한 온도를 부착하고, 연극적인 언어로 백석을 일으켜 세운다. 토속적인 언어로 시를 써온 백석과 우리의 전통의 재료를 들고 싱싱한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언어로 장착시켰다. 그동안 대한민국 연극사에 획을 긋는 동시대 강렬한 우리 연극으로 확장하고, 흡수시켜온 이윤택 연출가와의 절묘한 조화다. 한국연극계의 대표적인 연출가와 극단. 그리고 백석의 만남은 한편의 시다.

연출의 <백석우화> 연극 언어는 마치 시인의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다. 시로 되돌아가 가장 한국적인 토속 언어로 시를 그려낸 백석 시에는 드라마 같은 연극성이 짙게 깔려있다. 시를 들으면 삶이 보이고 걷고, 뛰며 백석이 바라본 진솔한 시선과 애절한 감정이 겹겹이 감싸고 있다. 이번 백석우화에서는 극의 장면을 11장으로 백석의 시를 연결해 장면으로 묶는다. 연출은 시인의 삶과 시의 애잔한 향기를 연출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름다운 우리의 소리언어로 토해낸다. 소리는 가슴으로 절여오고, 백석의 시는 삶으로 재현된다. 시는 배우들의 판소리로 입혀지고, 또 다른 연극언어가 된다. 우리말로 토해내는 시의 언어는 가슴을 펼 수 없게 만든다. 애잔하게 전류를 흘려보내고 전류는 오감으로 박혀진다.



백석의 자유로운 시의 영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석동에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은 19세 때 그의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조선일보 작품공모에 단편소설로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첫 시집 ‘사슴’(1936)이 출간됐다. 시대의 암울함속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평범하지 못했다. 백석의 자유로운 시의 영혼은 해방이전과 이후, 갈라진 이념의 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로운 시인의 영혼은 그의 삶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친 역사에 갇혀 있었고, 월북 작가라는 통로에 막혀 남한에서는 읽을 수 없었다. 평안북도 정주가 그의 고향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시인은 이념과는 무관하게 가족과 고향에 남게 된다. 1987년 월북 작가 해금조치로 그의 시가 대중적으로 읽혀지기 전까지는 시대의 사상검열과 이념의 통로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백석은 북에서도 이념으로 갈라진 시를 쓰지 않기 위해 번역과 동시에 몰두했다. 북에서도 그의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은 체제의 이념과 달라 비판을 받고 사상전환의 이유로 고단한 수용소를 거쳤다. 북에서도 사회주의 사상이 온전하지 못한 부르주아로 분류돼 노동농장으로 유배된다.

1962년에 북한은 그의 작품을 전부 수거해 폐기 처분을 했다. 삼수갑산 오지로 보내져 85세에 그의 삶이 꺼질 때 까지 37년 동안 삼수갑산 협동농장에서 가족들과 살았다. 산수갑산 오지에서 살면서도 매일 시를 썼다. 그의 시 원고는 불에 타 연기로 동시대 삶에 멈추어있다. 시인의 노래는 가장 토속적인 우리 언어로 한복의 아름다움으로 옷을 입고, 삶의 절경의 한 복판으로 이끈다.

이 절경의 백석 시인의 노래들은 이념을 초월한다. 삶과 시인이 바라보는 진솔함과 애틋함은 절박함을 넘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툭툭 쳐대는 모양은 강렬해 그가 바라보는 삶 풍경에 탑승하게 된다. 그가 가슴으로 품어댄 사랑도, 삶의 애잔함도, 모던보이의 기질도, 시인의 풍파도, 체제에 대한 고단함도, 시인의 눈으로만 보고 담으려고 한 시인의 진실 된 시선 속으로 향해진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우리의 소리로 토해내는 연극, 백석우화의 울림.



이윤택 연출의 백석우화는 백석의 시를, 연극으로 다시 쓴 연출의 시다. 시극(詩劇)의 아름다움과 연극의 농도가 짙게 융합되어 백석 삶의 평전을 연출 특유의 시선으로 묶어 아름다운 우리말로 토해낸다. 백석 시로만 극의 간극을 좁히고, 시적 장면을 연결해 삶과 내면에 이음새를 만든다. 시로 부착된 극적 장면들은 북에서 생을 마친, 백석 삶의 궤적을 그리고 시의 온도를 강렬하게 품는다. 가장 토속 언어로 시를 그려온 백석의 시는 살아온 삶을 역 주행하면서 배우 오동식은 시대를 품고 초월하는 애잔함을 그린다. 천진난만한 광대로 내면의 옷을 갈아입고 시인의 절박하고 순수한 내면을 끌어안는다.

무대는 간결하다. 무대 정면 윗벽으로는 각 장면으로 이어지는 백석의 시가 극중 장면으로 연결된다. 공연 전 배우 김미숙은 무대로 나와 시인 백석의 삶을 들려준다. 이어 백석 시의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들려주는 배우의 소리는 시를 움직이고, 김미숙은 백석의 시 <여우 난곬족>을 판소리로 백석 시대에 투영된 삶의 전경을 탁월한 우리 소리로 운율과 가락을 만들고 한과 고단한 삶을 시의 소리로 그려낸다. 눈물이 고인다. 백석의 시로만 연극적인 장면을 구성하고 시에서 터져 나오는 백석의 삶에 배우들은 고스란히 몸으로 체온을 담아 육감과 우리 소리언어로 받아낸다.

1장 <백석의 시 읽기> 장면에서 우리 토속적인 언어의 강렬함을 들어내는 시 <여우난곬족>는 백석 시중에서도 절창으로 꼽힌다. 이 시로 극의 도입은 백석의 삶을 불러내고 시의 틈새로 포개져 있는 인물들이 시를 뚫고 나온다. 백석의 시와 시로 극중 장면을 연결해 온전한 연극적인 형태를 세우고 판소리로 이음새를 붙인다. 체온의 육감으로 백석의 시를 읊는 배우들의 언어는 독특한 우리소리가 되어 돌아오고, 백석의 독특한 스타일에 토속적 시의 언어는 극적인 장면의 함축한다. 백석의 언어는 판소리로 언어의 심장을 부착한다. 백석의 시는 살아 숨 쉬는 극으로 시의언어가 된다.

1장에서는 시창 해설자를 통해 백석 시의 특별함을 얘기한다. “각각의 장면은 시간적인 질서에 따라 놓여 있어 서사적인 진행 과정을 보이지만, 시의 초점은 완결된 플롯을 지닌 이야기를 추구하기 보다는, 각각의 장면에 대한 장황한 서술과 묘사가 이어지는 독특한 스타일로써 판소리 양식에 닿아 있는 것입니다.” 연출은 백석의 토속적인 언어에 판소리 양식을 입히는 강한 실험을 한다. 실험을 통해 백석의 시에서 나타나는 연극성과 시에 들어난 아름다운 우리말과 그의 삶 내면의 온기는 백석의 우화가 된다.

시는 입체감으로 살아 움직이고 언어는 연극을 흡수한다. 백석의 시로 삶의 연대를 만들고 이념과 사상을 초월한 시인의 애절한 삶의 속도를 올려놓는다. 2장 <나타샤는 누구인가?> 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통해 기생 자야와 자유로운 연애관을 투영한다. ‘나타샤’를 향한 시인의 초월적인 욕망은 단순한 모던보이 기질로만 좁혀지지 않는다. 시대 한복판에 서서 그가 바라보는 현실을 풍경이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는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고뇌가 숨을 쉰다.

3장.<경계인> 부터는 해방 이후에 고향 평안북도 정주에 안착한 백석의 삶이다.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는 맑은 영혼의 시인일 수밖에 없는 백석의 고뇌가 그려진다. 세 번째 아내이자 피아니스트 문경옥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쇼팽의 ‘혁명’을 연주하자 백석은 파를 들고 절망한다. 문경옥이 김일성을 위해 작곡한 “우러러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피아노 반주에 백석( 오동식 분)은 시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시창으로 노래한다.

백석의 파는 갈라져 가는 사상과 이념의 절망성에 시인으로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는 백석의 삶의 고뇌와 천진함이며 이념으로 상실되어 가는 고향 땅을 회복시키고 싶은 내면의 강한 욕망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공연책자에 나온 백석시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中 )

4장.<포화 속에서 「고요한 돈」을 번역하다> 부터는 6.25 전쟁 직전부터 이후의 백석의 삶이다. 치우친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채 번역과 동화시에 몰두하는 백석이다. 4장에서 고요한 돈 1,2권을 번역한 백석은 3권 번역을 앞두고 전쟁이 일어난다. 한설야(이동준 분)는 전쟁의 포탄을 피하지 않고 고향에 남아 번역을 마치려는 백석에게 “백석씨 당신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가기 힘들어”한다. 마지막 장면에 전쟁의 폭음과 함께 3권을 번역하는 원고들은 불에 타고, 갈라져 가는 전쟁의 삶에서도 시인으로써의 순수한 내면을 강렬한 장면으로 부착한다.

이 순수한 시인의 내면은 5장 <동화시를 쓰다>로 연결한다. 1956년 <아동문학> 1호에 실린 <까치와 물까치>,<집게네 네 형제>와 <메‘돼지>, <기린>, <산양>의 백석의 동화시들은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에 의해 백석이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발표 무대로 아동극과 인형극에 등장하는 막대 인형과 탈들을 들고 연희단 거리패의 특유의 놀이로 입체감 있는 극중극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백석의 동화시에는 미취학 어린이를 선동할 수 있는 사회주의이념과 체제사상이 들어나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삽수갑산’으로 유배된다. 오동식은 백석의 동화시 <굴>을 절망의 내면으로 우리의 언어로 백석 시에 생명을 부착한다. 백석에게 동화시는 정치적인 이념의 선동적 언어가 아닌 동심의 내면으로써 사랑이다.

삼수갑산으로 유배되어 있는 삶을 배우 김미숙은 김소월의 <삼수갑산>을 서도소리로 시의 언어를 감싸 안고, 애절한 소리에 시인의 내면을 품는다. 삶과 가족, 그리고 이념의 사이에서 절망하고 고뇌하는 백석. 백석이 처음 발표한 보고문 형식의 에세이 <관평의 양>의 북한체제의 인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서술한 글이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백두산으로 가서 두 번째로 쓴(1960) 등정에세이 <삼지연 스키장을 찾아-눈길은 혁명의 요람에서>가 발표되고 백석이 남쪽의 친구 신현중에게 쓴 편지 형식의 에세이 <붓을 총·창으로!>는 북한체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삶에 가장으로써 절박함을 노래한다.

10장.<백석이 쓴 이솝우화>에서는 가장 비극적인 백석의 운명과 삶을 ‘광대’로 환치한다. 사상과 이념의 통로에서는 진솔하게 바라보는 대로, 삶과 인간의 풍경을 진실한 언어로 시를 쓸 수 없다. 갇혀 있는 체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체제에 광대일 수밖에 없는 백석의 운명을 탁월한 해석의 시선으로 그려 넣는다. 배우 오동식은 백석의 기구한 운명에 스스로 얼굴에 분칠을 하면서 광대로 변해간다. 표정은 절망으로, 시인의 내면은 찢겨짐으로 백석의 이솝우화를 들려주는 배우의 몰입은 백석의 내면으로 안착해 강한 전류를 흘려보낸다.

오동식은 절망하고 고뇌하는 백석의 내면을 강하게 품고, 배우 이승헌(화자1, 리원우 외) 특유의 강렬한 무게감으로 무대공간을 채운다. 김미숙은 백석 부인(리윤희 분)외에도 연기와 판소리를 넘나들며 백석의 시를 애절한 소리로 정갈한 맛이 풍기는 우리 언어로 시의 향기를 감싸 안는다. 이 밖에도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의 균형 잡힌 연기는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백석의 삶을 특별한 무대로 올려놓고 있다.

시의 아름다움을 연극적 오감으로 체감하고 싶다면 연극 <백석우화>는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시를 보고, 듣고, 읽고 싶은 관객에게 권장하고 싶은 연극이다. 11월1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