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사 어떨까. “대학 가서 하면 되잖아. 그 때까지만 죽은 듯 지내자고.”(오운·이준수 역) “야,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은 척을 해? 지금 행복하면 안 되는 거야?”(정은지·강연두 역) 이런 대사도 있다. “기득권이 생각보다 살벌해요. 왜? 무서운 게 없으니까 뵈는 게 없거든.”(이원근·김열 역)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KBS 월화드라마 ‘발칙하게 고고(GoGo)’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다소 진부한 듯하지만 고개도 끄덕여진다. 고등학생들이 할법한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보다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드라마는 상위 1%의 학생들이 모인 자립형사립고 세빛고를 배경으로 한다. 세빛고의 상위 5% 아이들과 하위 5% 아이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하위 5% 아이들은 오로지 성적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오직 행복해진다는 이유만으로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숨통 트이는 시간’을 벌고 있는 아이들이다.
상위 5% 아이들은 독을 품고 있다. “내가 너랑 똑같은 교복 입고 있다고 우리가 비슷하다고 보는 거니? 학교만 벗어나면 너랑 나랑은 급이 달라. 넌 날 쳐다보지도 못할 거야.”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경쟁자들을 눌러야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술도 마신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 벌점만 깎이지 않으면 된다. 성적이 좋기 때문에 더 괜찮다.
그런 성적 상위 5% 아이들과 하위 5% 아이들이 ‘치어리딩 지역예선 우승’을 위해 한 데 묶였다. 어떤 아이들은 미국 아이비리그 지원을 위한 ‘스펙쌓기용’으로, 어떤 아이들은 ‘친구를 돕기 위해’ 혹은 ‘행복하려고’ 원치 않은 일에 발을 들였다. 기초체력 쌓는 훈련도 견디지 못했던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시청률은 2~3%대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망한 드라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관심은 뜨겁다. CJ E&M의 콘텐츠파워지수(CPI)에서 5위를 차지했다(10월 5~11일 기준). 가장 몰입도가 높은 방송 프로그램으로도 꼽혔다. 10~20대들이 특히 열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빛고 교장은 촌지를 받고, 성적 상위 몇몇에 스펙을 몰아주고, 아이들끼리 성적 때문에 뒷거래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풋풋한 열여덟 살의 꿈과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벌한 교육현장에서 결국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이다.
이은진 PD는 제작발표회 때 “우리 사회에 수많은 부조리가 있지만 아직도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치어리딩을 통해 우리 사회를 응원하고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이 시대 고등학생들은 잘 살고 있는 걸까...살벌한 교육 현장의 희망 보여주는 '발칙하게 고고'
입력 2015-10-21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