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작가 지석철 홍익대 교수 ‘의자로 쓴 스토리’ 개인전 노화랑 10월 30일까지 여행 그림 신작 30여점

입력 2015-10-18 15:44
부재의 기억-메콩, 캄보디아(The Memory of Nonexistence-Mekong, Cambodia), 92.4 x 122.4cm, Oil on canvas, 2014
부재의 기억-부다페스트, 헝가리(The Memory of Nonexistence-Budapest, Hungary)78x101.6cm, Oil on canvas, 2014
부재의 대좌(對座)-카사블랑카, 모로코(Contemplative Encounter of Nonexistence-Casablanca, Morocco), 92 x 137cm, Oil on canvas, 2014
예사롭지 않은 날-아테네, 그리스( Unusual Day-Athens, Greece), 130 x 90cm, Oil on canvas, 2015
예사롭지 않은 날-고아, 인도(Unusual Day-Goa, India), 77.5 x 49.5cm, Oil on canvas, 2014
그의 그림에는 의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잘 살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의자가 어디 있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빈 의자는 아무 풍경에서나 무심코 던져져 있다. 넓고 황량한 대지 위에 몰골만 남아 있는 의자도 있다. 황토 바닷물 위에 홀로 조각배에서 낚시하는 의자도 있다. 풍력발전소에서 덩그러니 쓸쓸하게 놓여 있는 의자도 있다.

‘의자 작가’ 지석철(62·홍익대 교수) 작가의 그림들이다. 의자는 작가의 분신이자 부재의 상징물이다. 현대인의 상실감과 고독, 불안의 정서를 대변한다. ‘극사실 회화’ 1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그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3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의 배경은 더욱 다양하고 이국적이다.

작가가 의자에 관심을 둔 것은 1982년부터다. 한국의 대표 청년작가로 제12회 프랑스 파리 비엔날레에 초청된 그는 맥주 컵 크기 정도의 미니 의자를 100여개를 출품하면서다. 이 작품으로 그는 파리 비엔날레가 선정한 10대 작가로 선정됐고 ‘의자 작가’로 브랜드를 구축한 계기가 됐다. 조각인 ‘미니의자’를 만들고 1990년대 초반부터는 빈 의자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빈 의자는 의자라는 개념만 있지 기능은 없는 의자를 의미한다. 의자는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삶에 지친 현대인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휴식의 공간,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고나 할까. 그는 의자와 풍경을 그리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조건에서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손맛으로 재현한다.

100호짜리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개월 이상이다. 그런 노력으로 한국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극사실 화법에 다양한 스토리를 응축한 ‘다큐멘터리 회화’를 개척하고 있다. 누런 황토바닷물 위에 홀로 조각배에서 낚시하는 상황,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는 풍력발전소의 상황 등을 화폭에 담았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의자로 쓴 스토리’다. 지난 10년간 미국 유럽 아시아를 여행하며 채집한 다양한 이미지와 빈 의자를 병치해 현대사회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묘사한 근작 30여점을 내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현실과 비현실,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개념이 어우러진 희망의 세계”라며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따뜻함과 행복함을 주는 게 나의 임무”라고 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즐겼던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을 활용한다. 외줄 타는 인도 소년, 영국 브라이튼 해변의 여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전통가옥, 그리스 산토리니의 달동네, 스핑크스가 내려다보는 광장 등의 작품은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선사한다. 인공조명 같은 빛을 살려내 이미 사라진 시간과 공간을 실제처럼 되살려 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작가의 최근작들은 도시의 역사와 자연의 바다, 그리고 황야를 가로지르는 삭막한 대지는 물론이고 우리의 주변 곳곳에 널려 있는 부재의 정황을 폭로한다. 그는 냉엄한 다큐멘터리 양식을 통해 부재를 폭로하는 신종 리얼리즘을 창조한다”고 평했다. 전시는 30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말한다. “의자는 지금은 떠나고 없는 시간과 추억으로 저장된 존재감을 상징하는 기호입니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희망찬 꿈을 앉히려 한 거죠. 관람객이 그림을 보고 지나간 시간의 소중함과 만남의 세월을 따스하게 간직하고, 꿈과 희망을 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자는 고독한 현대인의 표상입니다.”(02-732-3558)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