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후퇴는 없다” 낙동강에 배수진 친 워커 장군 연설 전문 공개

입력 2015-10-18 10:33

"더이상 후퇴는 없다. 모든 부대는 반격을 가해 적을 혼란에 빠뜨려야 한다."

6·25 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이던 월튼 워커 장군은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9일 경북 상주에 주둔 중인 미 25보병사단을 방문해 이같이 독려했다.

워커 장군은 북한군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자 미 8군에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철수 개시일인 8월 1일을 사흘 앞두고 일선 부대를 찾아 낙동강이 최후의 방어선임을 강조하며 전의를 불사른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18일 워커 장군의 이 연설 전문이 기록된 미 25사단 보고서를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자료에서 이 보고서를 발견했다.

이 연설은 '맞서 싸울 것인가 죽을 것인가'(Stand or Die)로 후대에 널리 알려졌으나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커 장군은 연설에서 "우리에게는 던커크(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철수작전을 한 곳)도, 바탄(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철수한 곳)도 없다"며 "부산으로의 후퇴는 역사에 유례 없는 대참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한 팀으로 싸운다. 물러서는 자는 전우 수천명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모든 장병들은 우리가 방어선을 지켜낼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워커 장군이 미 25사단에서 이 연설을 하기 이틀 전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이 이곳을 다녀갔다.

워커 장군은 "맥아더 사령관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적의 공세가 가장 극렬한 곳이 어디인지도 안다. 그는 모든 수단을 다해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며 장병들의 마음에 맥아더 사령관에 대한 신뢰도 심어줬다.

이 연설이 있은지 한 달 보름쯤 지나 맥아더 사령관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워커 장군은 1,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가한 역전의 용사다. 2차대전 당시 그가 이끈 미 20군단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독일로 급속도로 진군하며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해 '유령 군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워커 장군은 6·25 전쟁에서도 낙동강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1950년 12월 2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부대 순시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남보람 연구원은 "워커 장군이 미 25보병사단에서 한 연설은 당시 급박한 전황과 그의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강조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