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형 전투기 기술 이전 거부

입력 2015-10-16 16:30
예상대로 미국이 한국형 전투기(KF-X·보라매) 사업에 필요한 4대 핵심기술 이전을 재차 거부하면서, 우리 정부는 18조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의 방향성 자체를 재검토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꺼번에 완벽한 성능의 한국형 전투기를 생산하겠다는 과욕에서 벗어나, 차제에 낮은 단계의 기술부터 차근차근 확보한 다음 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진화적 개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된다.

국방부는 16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워싱턴 국방부(펜타곤)에서 애쉬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들 핵심기술 이전문제를 협의했지만 카터 장관이 “조건부로도 이전은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은 전날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기술이전이 힘들다’는 서신을 국방부에 보냈다. 확실하게 미국이 기술이전 거부의사를 명확히 한 셈이다.

대신 한·미는 KF-X를 포함한 방산기술협력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이 협의체를 통해 KF-X 등에 필요한 기술들을 폭 넓게 받아오고 독자 기술개발에 따른 위험성을 줄이겠다는 게 국방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전투기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기술이 사실상 ‘이전 불가능’으로 결론 나면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게 됐다. 방사청은 일단 유럽업체들과 이전협상을 마무리 짓고, 주요 운용개념(알고리즘)을 전수받고, 나머지는 독자개발에 나서겠다는 스탠스다.

그러나 독자 기술개발이 진척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처음 전투기 개발에 나선 우리 당국이 짧은 시간에 정밀기술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논리다. 또 유럽의 체계통합 기술을 다른 미국제 장비와 통합하는 것도 어렵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개발기간이 더 걸리고, 추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항공 전문가들은 과도한 의욕으로 처음부터 완벽하게 한국형 전투기를 생산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방위산업 선진국들도 전투기와 같은 첨단무기는 배치(batch)-1, 배치-2 등 단계별로 성능을 조금씩 발전시키며 개발하고 있다. 현재 우리기술과 이전받을 수 있는 유럽기술을 냉정하게 판단해 개발 가능한 현실적 수준을 검토한 뒤 목표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발지연에 따른 공군 전투기의 전력공백을 최소화할 대안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