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13일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13일로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입법부 권력 지형을 결정하는 선거일 뿐 아니라 오는 2017년 차기 대권 경쟁의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여야는 사활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선거를 180일 남겨놓은 현재까지 선거구 획정작업이 늦어지면서 후보들이 오를 '링'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내년 총선은 도시인구 증가 및 농어촌 인구 감소에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2대 1 이내로 줄이도록 결정하면서 선거 지형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역선거구의 4분의 1 이상이 인구 증가에 따른 분구 또는 인구 감소로 인한 통폐합 대상이고 인근 선거구의 통폐합·분구로 영향을 받게 되는 선거구까지 합치면 절반 가까운 선거구에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1988년 1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뒤 가장 큰 규모의 선거구 재조정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에 따라 여야는 선거구 획정 논란을 막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국회 밖에 독립기구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설치, 선거구 획정 작업을 맡겨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대 선거 때처럼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국회 제출 10월13일, 최종 확정 11월13일)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여야가 선거구 감소가 불가피한 농어촌 지역 대표성 문제와 비례대표 의석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놓고 입장이 맞서면서 획정위에서 '여야 대리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결국 여야 지도부 간 담판을 통해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쟁점을 해소해야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여야 지도부는 기싸움만 벌이고 있다. 절박감은 보이지 않는다. 역대 선거 때처럼 선거를 1∼2개월 앞두고서야 최종적으로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로 인해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느 '운동장'에서 준비해야 하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정치 신인의 경우 예비후보 등록시기를 선거일 전 6개월로 연장하자는 김무성·문재인 양당 대표의 지난달 28일 합의가 물거품이 되면서 현역에 지나치게 유리한 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각 당은 총선에 나설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 방식도 확정하지 못한 채 당내 주류·비주류 간 샅바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공천 룰 결정'이 늦어지면서 불안에 떠는 현역 의원들은 정기국회 중임에도 통상적인 의정 활동에 전념하지 못한 채 지역구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법안 심사 및 현안 처리 등이 지연되고 있어 입법부 역할 공백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초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야당의 거부로 이 제도 도입이 무산된 뒤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기구를 만들기로 했지만, 위원장 인선을 놓고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와 비주류인 비박(비박근혜)계가 팽팽히 맞서면서 기구 구성이 표류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현역 의원 20% 물갈이를 위한 평가를 담당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인선을 놓고 주류인 친노(친노무현)계와 비주류인 비노(비노무현)계의 대립 속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선거 6개월을 남기고도 모든 게 불확실한 내년 총선을 대비해 여야는 '선거 프레임'을 짜는 데 몰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차에 입법부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총선을 치르는 만큼 성공적인 국정 마무리를 위해선 여당의 안정적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국정안정론'을 전면에 내세울 태세다.
이와 관련,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현안을 힘있게 풀어가고 국민 다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국회에서 대변하기 위해서는 우리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획득)해야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또 공공·노동·금융·교육 분야의 4대 개혁과 경제활성화 입법을 앞세워 '개혁정당 대 반(反)개혁정당'의 구도로 몰고 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의 의미를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규정,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부각시키는 '무능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면서 '부자경제 대 서민경제', '특권경제 대 공정경제'의 구도로 맞설 태세다.
새정치연합 핵심관계자는 "내년 총선은 무능력한 현정부의 독주에 면죄부를 줄 것이냐, 따금한 경고와 견제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을 것이냐는 분수령"이라면서 "야당이 힘을 합쳐서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를 저지해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여야, 정국 주도권 치열…역사교과서 국정화 계기 '이념전쟁' 점화 = 내년 총선을 겨냥해 벌써부터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야 간 쟁탈전은 치열하다.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당별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을 일관되게 앞서면서 지표상으로는 여당에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19대 총선까지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고, 새정치연합이 신당·탈당론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반여(反與) 정서와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모아 지지도 상승세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총선 판세를 점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번 선거도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 될 전망이다. 수도권 지역구가 전체 지역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수도권 민심은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역대 선거마다 5% 안팎의 득표율 차로 당락을 결정짓는 박빙 승부처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론의 풍향을 가늠할 쟁점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주목된다. 이는 단순히 교육 분야의 현안에 머무르지 않고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확대되면서 표심(票心)을 가를 주요 변수로 꼽힌다.
현재 고교 2·3학년생의 경우 최소 수십만표를 행사할 수 있는 예비 유권자이고, 전체 중·고교생의 학부모까지 고려하면 역사교과서는 선거의 판도 자체를 뒤흔들 만한 소재다.
일단 정부가 새누리당의 강력한 요구에 부응해 12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방침을 발표하면서 공세의 고삐는 여당이 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검·인정 체제의 교과서들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심각하게 좌편향적으로 왜곡하고 국민 분열을 조장한다는 판단 아래 최고위원들이 총동원돼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에 전력투구할 방침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녀들의 미래를 늘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아들딸들이 사용하는 역사교과서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셔야 한다"며 "정말 깜짝 놀랄 것이고, 새롭고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역사 쿠데타'로 규정,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해임을 추진하는 등 맞불을 놓으며 전면전에 나설 태세다.
당 지도부는 이날 서울 도심에서 국정화 반대 시위로 여론전을 펴는 한편, 여당을 상대로 '지도부 담판'을 제안하는 등 역공을 시도했다.
다른 한편에선 이념적 외연 확장을 위해 북한인권법에 전향적으로 나서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교과서 추진은 친일을 근대화라고 미화하는 '친일 교과서'이자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찬양하는 '유신 교과서'"라며 "정권 입맛에 맞는 '정권 맞춤형' 교과서를 만든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역사전쟁'의 바닥에는 양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본격적인 선거전을 앞두고 '집토끼'부터 단단히 묶어두자는 심산인 셈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국정 교과서는 새누리당의 보수층 결집에 효과적일 수 있는 반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려 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여야의 총선 전략에 모두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내년 총선 180일 앞으로” 역대 최고의 깜깜이 선거 불보듯 뻔해
입력 2015-10-12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