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에게 가을야구란 ‘보너스’ ‘추수’ ‘추억’

입력 2015-10-09 19:09
많은 야구팬들에게 가을야구는 한바탕의 축제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가을의 전설’로 남기를 꿈꾼다. 이런 행복을 누릴 특권을 가진 포스트시즌 진출 팀 팬들을 만나봤다. 하나같이 자신의 팀이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들에게 가을야구의 의미와 성적을 물어봤다.



#삼성 라이온즈 팬 민현기(27), “보너스를 받는 기분”

민씨는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대구시민야구장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삼성의 열혈팬이 됐다. 아버지는 그에게 “파란색 옷(삼성 유니폼 색깔)을 입은 선수를 응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서울에 온 지 10년이 됐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은 삼성뿐이라고 했다.

민씨는 가을야구에 대해 “한해의 보상과 같다. 연말 보너스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 즐겁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라는 의미다. 그는 “가을야구가 시작되면 스릴 있는 경기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즐겁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삼성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고등학교 후배를 포함해 매번 한국시리즈 때 함께 가던 지인 4명과 경기를 보러가기로 했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가 열리면 돌아가면서 클릭해 반드시 입장권을 구입하겠다는 작전도 세웠다.

그는 야구를 보는 게 가장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덧붙였다.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보다 더욱 서로 친밀해 질 수 있고 비용도 덜 든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친구들을 모아 3~4시간을 노는데 야구보다 좋은 게 없다”며 “야구를 한 번 보는데 4~5만원이 든다. 술을 먹는 것 보다 적게 든다”고 강조했다.



#두산 베어스 팬 최창순(48), “가을야구는 추수”

최씨에게 가을야구는 ‘추수’다. 그는 “봄부터 두산 경기를 쫓아다녔다”면서 “가을야구는 1년 농사를 지은 것을 거둬들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게 야구의 묘미에 대해 물어봤다. 최씨는 야구가 사회생활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구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실수가 가끔 용인되는 곳이다. 이를 커버할 기회도 생긴다”고 전했다.

또 가을야구는 ‘희열’이다. 최씨는 1995년과 2001년 두산이 우승할 때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우승했을 때 엄청난 대리 만족을 느꼈다”면서 “한 해 선수들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종 승자가 되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두산이 꼭 가을야구의 최종 승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한국 나이로 50세가 된다. 최씨는 “10대와 20대, 30대 때 두산이 우승을 한 번씩 했다. 40대는 올해가 마지막인데 꼭 현장에서 우승을 보고 싶다”고 토로했다.

최씨도 야구에 푹 빠져 있었다. 1년 내내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야구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노년이 돼서도 여가생활을 야구와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한 번은 60~70대 노인 두 분이 경기장에서 자리 잡고 가운데 족발을 펴 놓은 채 맥주 한잔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멋있었다”면서 “이를 함께 본 아들에게 ‘나도 늙으면 여가생활을 할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원년부터 OB 베어스와 두산을 응원했기에 해박한 야구 지식을 자랑했다. 그는 올해가 두산이 가을야구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는 적기라고 했다. 최씨는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며 “투수력이 좋은 팀이 가을야구에선 이긴다. 수비에서도 우리가 강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넥센 히어로즈 팬 문성철(33), “옛 영광 다시 한 번”

문씨는 인천이 고향이다. 그래서 인천 야구팬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로부터 시작된 인천 프로야구 팀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이후 들어선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떠났다. 많은 팬들이 새롭게 인천에 온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겼지만 그는 선수들을 따라 현대의 후신인 넥센을 응원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넥센이 2000년대초 ‘왕조’로 군림했던 현대의 영광을 재현해 주길 간절히 바랬다. 문씨는 “원래 가을야구의 절대 강자는 현대였다”면서 “이제 그 피를 물려받은 넥센이 다시 정상에 올라설 차례”라고 역설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넥센의 모든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다 볼 계획이다. 그는 온라인에서 야구용품 사업을 하고 있다. 업무를 미리 처리하고 넥센의 가을야구를 모두 볼 계획이다. 넥센은 지난해 아쉽게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패퇴했다. 그래서 문씨는 이번에는 동료들과 같이 더 큰 응원을 준비 중이다. 가로 5m, 세로 10m짜리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목 놓아 선수들을 응원할 계획이다.

그는 가을야구에 대해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라고 했다. 이어 “야구 팬으로서 가을야구가 끝나면 겨울이 정말 힘들다”면서 “매년 가을에 생기는 추억으로 겨울을 버티고, 봄부터 다시 내가 사랑하는 팀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