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빛의 산

입력 2015-10-08 19:12

빛의 산/겐유 소큐/펜타그램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4년여가 흘렀다. 당시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 이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현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는 전 세계에 원전 악몽을 현실화시켰다.

그 대참사의 현장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 겐유 소큐(59)가 2013년 일본에서 발표한 이 소설은 재난의 악몽을 감내하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에 관한 이야기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건은 어디에 버려야 하는가? 방사능에 오염된 흙이며, 나뭇가지 따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수록된 단편들은 우리에겐 먼 얘기지만 재난 현장에서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이 문제를 주요한 에피소드로 하고 있다.

표제작 ‘빛의 산’은 그런 구체적인 현실을 그리면서도 이를 진혼곡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단편이다. 재난 이후 이곳 사람들에게는 방사능 제거 작업이 일상이 됐다. 피폭량을 줄이기 위해 지붕을 걸레질하고 벽을 세척하고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일을 한다. 단편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모두가 꺼려하는, 방사능 제거작업 후에 생긴 쓰레기를 자신의 집터에 가져와 쌓는다. 할머니의 염려에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방사능폐기물은 어느새 거대한 산이 됐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 화장식은 쓰레기 산의 꼭대기에서 이뤄졌는데 이후 산에서는 묘한 빛이 흘러나와 방사능 투어의 명소가 됐다.

재난 현장에서 새롭게 터전을 뿌리내리는 이들도 등장한다. ‘기도하는 사마귀’는 묵묵히 지켜가는 사람과 새로 정주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유대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야마구치는 쓰나미로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경영하던 결혼식장도, 집도 잃어버렸다. 더구나 말기암 판정까지 받았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결혼식 의뢰가 들어온다. 도쿄에서 구조반으로 왔던 젊은 의사가 현지에서 만난 사회복지과 직원과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야마구치는 주선했던 결혼식을 다 마치지 못하고 쓰러지지만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단편 속에서 이렇듯 터전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금을 울린다. 보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는 재난이 가져온 가족 해체나 인터넷에 떠다니는 유언비어로 인한 불안 등일 것이다. ‘소금쟁이’에서 사고 직후 1차 피난시설이었던 체육관에서 아이만 데리고 사라졌던 치하루가 1년 반 만에 돌아와 결국 남편과 이혼도장을 찍고 돌아가는 내용이 그런 예다. 그럼에도 “괜찮아, 괜찮아”라며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는 토박이들의 모습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그 표현이야말로 재난의 현장을 지켜가는 그곳 사람들의 거대한 힘이다.

2001년 ‘중음(中陰)의 꽃’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저력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소설집은 지난해 일본문화청이 주는 ‘예술선장’ 문학상을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