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집권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과거 ‘제 3의 길’을 외치며 중도좌파 노선을 걸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연상시키는 연설로 눈길을 끌었다.
캐머런 총리는 7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자신의 슬로건인 “현대적이고 온정적인” 보수주의를 제창하면서도 평등과 아동복지, 빈곤 극복, 차별 철폐 등 주로 좌파 진영에서 제기되어온 이슈를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영국 언론은 이날 캐머런 총리의 연설이 블레어 전 총리의 2005년 노동당 전당대회연설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강력한 이민 규제, ‘일하는 복지’ 등에 대한 메시지가 비슷했다는 평가다. 일간 인디펜던트의 존 렌툴 기자는 캐머런 총리가 사용한 “여명이 새 빛으로 떠올랐다(dawn rose a new light)”라는 구절이 2005년 블레어 전 총리 연설의 “새 여명이 밝았다(a new dawn has broken)”라는 문장을 연상하게 하는 등 표현 면에서도 많은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적었다.
캐머런 총리가 이 같은 태도를 보인 데는 극좌 노선주의자로 평가받는 제러미 코빈 의원이 노동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생길 이탈표를 계산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블레어 전 총리의 ‘신노동당’ 노선 지지자들을 보수당으로 끌어오겠다는 속셈이다. 일간 가디언은 이날 캐머런 총리의 연설이 좌파진영 용어를 상당수 사용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면서,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는 게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캐머런 총리가 이날 코빈 대표에 대해 직접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한몫 했다. 캐머런 총리는 2011년 코빈 대표가 TV프로그램에서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의 전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체포되지 않고 사살된 데 대해 ‘비극’이라고 했던 발언을 끄집어냈다. 이어 “안보를 위협하고, 테러리스트를 동정하며, 영국을 증오하는 이 자의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영국)를 해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코빈 때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는 “가장 화가 나는 건 노동당의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 자신들만이 옳다는 독선”이라며 “정부가 지출과 이자율을 통제하지 못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도, 정부 부채 이자를 갚느라 복지 예산을 줄일 때 피해를 보는 것도 노동자들”이라며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코빈 대표의 주장을 직접 겨냥했다. 이어 “그렇다. 노동당 당신들은 노동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 해치고 있다”고 웅변해 보수당 당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코빈에 반격 날린 캐머런, 토니 블레어 따라하기’?
입력 2015-10-08 17:49 수정 2015-10-08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