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을 아래로 내린 채 걷고 있는데 앞서 가는 여성의 원피스 밑단과 높이가 비슷합니다. 이들의 뒤에서 걸어가던 헤라르도(Gerardo)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 챕니다.
중년 남성이 앞서 가는 여성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있다고 확신한 헤라르도는 휴대전화에 그 중년 남성의 모습을 담습니다.
몇 분간 여성을 따라가던 중년 남성이 마침내 휴대전화를 들어 무언가 조작하자 헤라르도는 여성에게 “당신의 모습이 촬영된 것 같다”고 알리고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합니다.
그리곤 중년 남성을 향해 “도대체 뭘 한 겁니까? 뭘 숨기려 하죠? 당신의 모습과 더러운 행동은 페이스북에 퍼질 것”이라고 소리치며 계속 쫓아갑니다. 중년 남성은 달아나다시피 택시를 잡아타고 떠납니다.
이 모습은 고스란히 헤라르도의 휴대전화에 담겼고 그는 페이스북에 이 영상을 올리고 경찰에도 영상을 보냈습니다. 이 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 네티즌들의 화제가 됐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코스타리카의 유명 변호사가 헤라르도의 행동에 대해 “코스타리카 현행법에 따르면 처벌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헤라르도”라고 얘기하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후안 디에고 카스트로 변호사는 “여성을 촬영한 중년 남성은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다”라며 “중년 남성은 여성에게 말을 걸지도 몸에 손을 댄 것도 아닌 만큼 코스타리카 형법의 처벌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중년 남성을 촬영한)비디오를 온라인에 게시하는 것은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의 모습을 사용한 것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는 법 위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어린 딸이 있는 헤라르도는 이에 대해 “나는 도대체 이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떻게 불과 몇 초 만에 선량한 사람이 범법자가 되느냐”며 하소연했습니다. 젊은 여성을 쫓아가며 도촬한 사람은 죄가 없고, 도촬범을 고발한 게 프라이버시 침해가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인 셈이죠.
코스타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네티즌들도 이에 대해 “오늘날 법은 옳은 일을 한 사람보다 범죄자들을 더 보호한다”며 개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사법기관의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가 밝혀져야 하겠지만 만약 중년 남성이 앞서가던 여성의 모습을 촬영했다면 그는 분명 범죄자입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헤라르도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개인정보를 페이스북 등 공중에 노출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몰래카메라 범죄자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정상 참작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처벌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