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검정제도 시행 이후 집필진 31명이 출판사를 옮겨다니는 등 교과서 제작에 중복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정 인사들의 이른바 ‘회전문 집필’이 반복되면서,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 내용이 ‘표절’돼 다른 교과서에 실리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교과서 근·현대사 집필진은 68%가 중복 집필진인 것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은 8일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검정 교과서 제도의 취지가 이미 퇴색했다”며 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실에 따르면, 2011년 삼화출판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모 교사 등 5명은 2013년 두산동아로 옮겨가 다시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이들은 2011년 삼화출판사 교과서에 “북한은 주체사상에 토대를 둔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근본적인 힘으로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웠다…. 북한 내부의 단합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을 실었다. 이 내용은 2013년 두산동아 교과서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기술됐다. 교육부가 북한 주장을 그대로 소개해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다며 2013년 수정 명령을 내린 대목이다.
집필진 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교육자료가 수년째 반복 기술됐고, 뒤늦게 수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6·25 전쟁과 관련해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해 주먹을 들먹이고……’(미래엔 2011년)라는 내용이 2013년에도 그대로 기술됐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2013년도에야 뒤늦게 수정명령을 내렸다. 한모 교사 등 6명이 수년째 미래엔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4명은 2003년 대한교과서 저자였다.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실은 2002년 이후 교과서 검정 집필에 3번 참여한 128명의 저자 가운데 31명(24%)이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특히 17명은 출판사를 옮겨가며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했다. 2003년 법문사 대표 집필자인 김모씨가 2014년 금성출판사로, 이모씨는 2011년 삼화출판사를 거쳐 2014년 두산동아로 옮겨가는 식이다. 나머지 14명은 같은 출판사에서 두 번의 교육과정 교과서를 집필했다. 3번 모두 한국사 검정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도 6명이나 됐다.
2011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37명 중 28명(76%)은 2014년도 교과서 집필에 또 참여했다. 특정 집필진이 한국사 교과서 출판시장을 독과점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2014년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중 근·현대사 부분을 집필한 22명 중 15명은 기존에도 지속적으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역사문제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특정 단체 소속과 학교 등으로 얽혀 있었다. 서 의원은 “교과서 집필진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단독]고교 교과서 회전문 집필
입력 2015-10-08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