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대응을 빌미로 이라크까지 보폭을 넓혀가며 군사적 역량을 ‘서쪽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최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이 참여하는 공동 정보센터 설립을 주도하는 등 미국과는 다른 독자적 중동 해법을 모색 중이다. IS라는 공동의 적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서방과의 입장 차이가 명확한 탓에 안 그래도 복잡한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때와 같은 ‘대규모 편 가르기’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걸프뉴스 등 중동 현지 언론들은 이라크 정부가 IS 대응을 위해 러시아에 공습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의회 국방·안보위원회 하킴 알자밀리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에 곧 공습을 요청하는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면서 “미국이 IS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러시아가 이라크에서 미국보다 더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IS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이라크 정부가 러시아쪽으로 점차 방향을 틀고 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이라크 정부에 러시아 공습 지원을 요청하지 말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고 아랍권 일간지 알하야트는 전했다. 하지만 이라크 군사 대표단이 관련 4개국이 함께 하는 IS 정보센터의 운영과 공조를 위해 수일 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덧붙였다. 이 정보센터가 합동 군사작전 사령부로 확대 개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지 언론에 계속 흘러나오면서, 그간 IS 대응을 주도해 온 미국 중심의 국제동맹군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군사 동맹체의 등장이 예고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IS 격퇴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IS 근거지 등에 대한 정보를 미국 측에 요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양측의 공조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공습의 90% 이상이 IS나 알카에다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며 러시아의 공습 의도에 재차 의구심을 제기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알아사드 정권과 맞선 온건 반군을 겨냥한 공습을 이어가는 한 실질적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중동 전략 확대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부 고위관계자를 이용해 “푸틴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데 영리하게 성공했다”면서 “러시아의 개입으로 오바마 정부는 (IS 등 중동문제에) 더 깊숙이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물러날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미·러 갈등 증폭, 시리아에 이어 이라크로 보폭 넓히는 러시아
입력 2015-10-08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