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이 폐암보다 더 무서운 이유(1) 한창 일할 나이 40,50대 남성 생명 앗아

입력 2015-10-08 13:37
악성 신생물(암) 성별 사망률 비교도. 대한간암학회 제공

<간암이 폐암보다 무서운 이유 두 가지>

(1)폐암은 은퇴연령 60대 이후 고령자 사망원인 1위, 간암은 한창 나이 40,50대 남성 사망원인 1위

(2)암 치료비 연간 3조7000억 원 손실로 위암 대장암, 폐암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국민경제에 악영향

김모(37·자영업)씨는 1주일 전 윗배 오른쪽이 기분 나쁘게 아파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만성 B형간염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 10년간 한번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간 초음파 검사결과 이상 음영이 보여 CT촬영을 했다. 그 결과 간 내 3분의2가 암세포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병기였지만,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유치원생인 딸과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의사가 그대로 둘 경우 기대여명이 4~5개월, 항암 치료를 한다 해도 11개월 안팎에 그칠 것으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역시 자영업을 하는 박모(50)씨도 지난 6일, 같은 병원에서 김씨와 비슷한 진단을 받았다. 1주일 전부터 등 쪽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받았다. 암세포가 이미 간 문맥과 척수로 침범한 4병기 상태라는 것이다. 의사는 낙심한 그에게 백약이 소용없고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창 활동적으로 일할 나이의 40, 50대의 남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간암 진단을 받고 쓰러지고 있다. 그래서 간암을 빨리 발견하기 위한 조기간암 감시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대한간암학회(회장 엄순호·고대안암병원 교수) 등 간 질환 전문가 단체에서 날로 높아지고 있다.

◇폐암보다 간암이 더 무섭다=실제로 간암은 암 중에서도 치료 예후가 좋지 못한 대표적인 암으로 꼽힌다. ‘침묵의 암’이라 불릴 정도로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도 특별한 이상 증상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는 “앞에 예로 든 두 중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상 증상을 느낄 때쯤엔 이미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다반사”고 설명했다.

이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한국인 주요 사망원인 통계를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는 잘 알려진대로 여전히 악성신생물(암)이다. 인구 10만 명당 150.9명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간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22.8명으로 폐암 34.4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사망자 숫자만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대한간암학회의 지적이다. 통계의 속을 들여다보면 폐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간암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고 했다.

다시 말해 폐암은 경제 활동을 안 하는 60대 이후 고령자에게 주로 생기는 반면, 간암은 일터에서 한창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연령대의 40, 50대 남자들의 생명을 어느 날 갑자기 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40대에서 3위, 50대에서 4위를 차지하여, 간암 및 간 질환은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한 40대와 50대에서 주요한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40, 50대가 간암에 걸려 사망하면서 사라지는 돈도 엄청나다.

임 교수는 “보건복지부 통계 등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간암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담은 2010년 기준으로만 봐도 약 3조7000억원으로 모든 암 중 1위이며, 위암(약 3조6000억원), 대장암(약 2조6000억원), 폐암(약 2조4000억원)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피해를 줄이려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B형간염 환자는 정기검진 6개월마다 해야=간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과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바르지 않은 음주문화가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실제 간암의 출발점은 70%가 B형 간염이다. B형 간염이 간경변으로 이환되고,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흔히 간 질환 전문가들이 간염 보균자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간암 발병 위험이 100배 이상 증가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의 B형 간염 보균자는 전체 인구의 5~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B형 간염 보균자가 간암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기검진과 적절한 치료를 제대로 받는 것이다.

적절한 항바이러스 치료는 간암의 전 단계인 간염과 간경변증, 이로 인한 합병증 발생을 감소시키고, 간암 발생을 초동 단계에서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간암은 원격 전이가 된 상태에서 발견하면 5년 평균 생존율이 2.8%에 불과하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약 49.3%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간암의 조기 발견을 위해 간암 감시검사 시스템부터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암은 2003년부터 국가 암검진 사업 대상에 포함되어 만 40세 이상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1년마다 간 초음파 검사 및 혈청 알파태아단백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간암 조기검진 수검률은 33.6%(2013년 기준)에 불과한 형편이다. 이는 위암의 73.6%, 대장암의 55.6%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간암 고위험군이란 간경변증, B형 간염항원 양성, C형간염 항체 양성, B형 또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 질환 등으로 2년 이상 의료 서비스를 받은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암검진 수검자 중 46%가 이들 고위험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

간암 감시 검진이 필요한 고위험군 선별을 위하여 생애전환기 검사(만 40세, 만 66세 시행)에 C형간염 항체 검사 및 혈소판 검사를 포함하여야 한다.

또 국가 암검진에서 시행하는 간암 감시검사 주기를 6개월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 눈에 띄지도 않던 초미세 간암 세포가 2㎝ 이상으로 커지는 데는 불과 4개월도 안 걸리기 때문이다.

◇간초음파 검사만으론 미흡 CT검사 추가해야=간암 검진으로 사용되는 간 초음파 검사 및 혈청 알파태아 단백의 민감도(검진 받은 후 1년 이내에 간암으로 진단된 모든 환자들 중 검진에서 발견된 간암 환자들의 비율)가 41.3% 정도에 그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자궁경부암(77.1%)이나 대장암(59.3%) 1차 스크리닝 검사결과와 비교할 때 10%포인트 이상 낮은 여과율이다. 복부 초음파검사와 혈청 알파태아단백 민감도 검사만으로는 간암 발생을 감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학회는 CT 혹은 MRI와 같이 정확도가 더 높은 검사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간암 조기검진 대상자들에게 연 1회 CT 혹은 MRI 검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높은 조기 진단률(57.3%, 우리나라는 45%)과 5년 생존률(42.7%, 우리나라는 30.1%)의 주된 요인이다.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내과 장재영 교수는 “진료를 보다보면 정기적인 검사로 건강을 지킬 수 있던 분이 있는 반면, 뒤늦게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늦은 환자도 종종 있다. 간암의 경우 발견 시기가 늦을수록 생존률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만성B형간염 환자 등 고위험군은 정기검진 시 간 초음파 검사 외에 CT 또는 MRI 검사를 추가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