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 돈 국민연금, 엘리엇 “소송 건다” 압박

입력 2015-10-06 18:00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지난 3월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주주이익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입장을 바꿔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을 상대로 엘리엇이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반발해, 삼성 계열사 합병을 도운 대가를 국민연금이 치를 위기에 처했다.

국민연금이 국회 보건복지위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6일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3월 18일 엘리엇과 만나 소문으로 떠돌던 두 회사 합병 문제를 논의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삼성물산 주가는 저평가 돼 있고 제일모직은 주가가 터무니 없이 올라 두 회사의 합병은 주주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이 만남은 엘리엇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엘리엇과 만난 국민연금 측 인사는 기금운용본부의 주식위탁운용팀장과 리서치팀장이었다. 엘리엇은 6월 3일 국민연금에 보낸 공문에 이같은 사실을 적시했다.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공식 발표되자, 국민연금은 내부 논의를 통해 찬성 입장을 결정했다. 엘리엇은 주주총회를 나흘 앞둔 7월 14일 국민연금에 공문을 보내 “합병 결과로 우리가 입게 될 손실은 국민연금 경영진이 초래한 결과”라며 “국민연금 경영진과 개별 구성원을 상대로 한국과 다른 관할권에서도 손해배상과 정보공개청구, 법적이 보상을 포함한 모든 법적인 구제책을 강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한국의 규제당국과 여타 공공기관에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이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최종 승인한 뒤에도 엘리엇은 국민연금을 상대로 “주주에게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한 이유를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우리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합병 과정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뤄지길 요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정식 회의가 아니라 다른 미팅 때 엘리엇 인사가 포함돼 인사하는 자리에서 삼성물산과 관련된 문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거기서 특정 사안을 논의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양승조 의원은 “국민연금은 주식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전문위원장의 요청도 무시했다”며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특정 기업과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이 왜곡된다는 평가를 받으면, 국제적인 불신과 국민경제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박은애 기자 fattykim@kmib.co.kr


-엘리엇, ‘3월 미팅’ 거론하며 “반대표 던져라” 계속 요구-

엘리엇 매지니먼트는 올해 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설이 돌자 삼성물산과 국민연금에 수차례 공문을 보냈다. 삼성물산에는 지속적으로 제일모직과 합병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하라고 요구했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에는 합병에 함께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 합병안이 통과되자 엘리엇은 의사결정 근거를 대라며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제일모직과 합병 안 하겠다고 확인해달라”=국민연금이 양승조 새정치연합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월 4일 삼성물산에 제일모직과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문의했다. 삼성이 확답을 주지 않자 2월 16일, 27일, 3월 11일 등 계속 서면을 보내 “경영진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없을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길 바란다(We are by means of this letter seeking your formal confirmation that no merger between the Company and Cheil Industries is being, or will be contemplated by the Directors)”고 끈질기게 추궁했다. 엘리엇 측은 “투자부서 관계자가 아닌 경영진의 입장을 듣고 싶다”며 만남을 요구했다.

이런 요청에 삼성물산은 4월 9일 이영호 최고재무책임자(CFO)와의 만남 자리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엘리엇은 합병 반대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하지만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엘리엇은 다음날 바로 서신을 보내 유감을 표명하고,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합병이 주주에게 손실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컨설팅 회사 등의 보고서를 인용해 삼성물산 주가의 현재 적정 가치를 10만597~11만4134원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제일모직 가치는 주당 6만3353~6만9942원으로 분석됐다고 덧붙였다. 5월 26일 제일모직 주가가 18만8000원으로 치솟았지만 고평가된 것이라고 강조하며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요구→합병 책임 추궁=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10% 가량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도 접촉했다. 6월 3일 엘리엇이 국민연금에 보낸 문서를 보면 3월 18일 기금운용본부의 팀장들과 처음 만난 것으로 돼있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7.12% 보유하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2월에만해도 약 3%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지분을 늘렸다. 이때 보낸 서신을 통해 엘리엇은 3월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함께 반대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했다.

7월 17일의 삼성물산 임시주총을 앞두고 엘리엇은 국민연금에 더욱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7월 8일에는 전날 나온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 ISS와 국내 사회책임 투자 전문 의결권 자문기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 사실을 강조하며 국민연금도 반대표를 던질 것을 거듭 요구했다.

바로 다음날 또다시 보낸 공문에서 엘리엇은 “이 합병은 불공평하며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합병이라 생각한다”며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또는 경영진이 본건 합병에 대한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찬성투표를 한다면 삼성물산의 주주 및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즉각적이고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발생시킬 것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이어 투명성과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경우 한국 주식시장과 국제적 위상이 영구적으로 실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총 사흘 전인 14일엔 합병안 통과로 엘리엇이 손해를 입을 경우 국민연금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엘리엇은 전문위원회가 합병안 투표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외부인사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표결을 거치나 이번엔 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국민연금이 합병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면 엘리엇이 입는 손해는 국민연금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성사된 뒤인 7월 24일에는 국민연금에 합병안 찬성 근거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을 대표한 투자위원회의 합병 찬성 결정이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거나 신의성실에 기초해 객관적으로 내려진 판단 혹은 주요 핵심사항을 제대로 분석해 내놓은 결정이라 생각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8월 11일엔 지난 서신에 답변이 없었음을 언급하며 다시 한번 합병 찬성 이유를 밝히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합병에 대한 정밀조사, 삼성물산 주주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포함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달 열린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엘리엇이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통해 한국정부를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은애 김지방 기자 limitless@kmib.co.kr


-“투자 정보 노출될 수 있다”… 입 닫은 국민연금-

국민연금공단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한 과정에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합병 안건을 넘기지 않고 자체 판단키로 한 회의록, 투자위원회가 합병 찬성을 결정한 회의록, 합병 찬성 결정에 대한 근거 등을 공개하라고 국민연금에 요구했다. 국민연금은 영업상 비밀로 분류해 투자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며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의 비공개 방침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민연금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엘리엇의 소송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의 투자자-국가 소송(ISD)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6일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국부펀드 성격을 갖고 있어 국민연금의 결정은 정책의 변화로 해석될 수 있다”며 “외국인투자자가 정책결정의 변화로 투자 이후 손해를 봤다면 ISD 소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정 과정이 정상적이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아니라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하면서 통상적인 절차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한 박 교수는 “국민연금이 소송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지난달 14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엘리엇이 ISD를 통해 한국정부를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7월 14일 국민연금에 공문을 보내 국민연금은 물론 “관련 규제당국과 여타 공공기관의 집행과 감독 권한을 가진 자에 대해 우리의 주장을 제기하고 표명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한국의 관할권 밖에서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연금이 ISD를 방패삼아 지나친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엘리엇에 실질적으로 기대치를 불러일으킬만한 확약을 했는지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