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난민 수용에 앞장 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9일 발표될 노벨평화상 후보로 유력히 거론되는 가운데 정작 ‘난민들의 천사’는 따로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NBC 방송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은 5일(현지시간) 아프리카 북부의 에리트레아 출신의 무시에 제라이(40·사진) 신부의 활약상을 조명하면서 “제라이 신부가 노벨평화상의 깜짝 수상자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제라이 신부는 30년째 독재가 이어지는 고국을 23년 전에 떠나 지금은 스위스에 머물며 난민 구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 난민들에게 ‘난민 119' 또는 ‘난민 대사’로 통하는 제라이 신부는 2003년부터 난민 돕기를 해왔다.
당시 리비아 난민수용소에 있는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들을 돕기 위해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한테 전화를 걸라며 위성전화 및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준 게 계기가 됐다. 난민들은 전화번호를 수용소 벽에 적어놓았고, 이후에 오는 난민들도 그의 전화번호를 메모해 놓았다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면 제라이 신부에게 전화를 걸곤 한다. 특히 지중해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거나, 유럽에 도착해 트럭을 타고 가다가 질식사 위기에 봉착한 난민들이 제라이 신부에게 자주 전화를 건다. 24시간 전화를 응대하는 제라이 신부는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받으면 곧장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해안구조대, 또는 육지의 구조대에 전화를 걸어 난민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1인 119’ 역할을 하면서 구한 난민이 수천명에 달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난민들의 천사란 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아프리카 뿐 아니라 멀리 인도네시아나 중동의 예멘 등지서도 제라이 신부에게 SOS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다. 현재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난민들과 소통하고 있고, 세계 각지의 언어를 쓰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전 세계 난민들의 도움 요청에도 응하고 있다.
그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의 ‘난민 80만명 수용 방침’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제라이 신부는 “난민을 얼마나 수용할지에 대한 문제 못지않게 난민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국경을 건너고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숱한 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바다를 건너가는 과정에서 난민들이 목숨을 잃지 않도록 터키를 통한 ‘인도적 육로’를 개설할 것과 바닷길 대신 항공로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난민들의 119 천사
입력 2015-10-05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