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39. ‘어른 영화’를 찾아서

입력 2015-10-05 15:25

비록 옛날 영화지만 오랜만에 ‘어른 영화’를 봤다.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Strangers When We Meet 1960)'. 리처드 콰인이 연출하고 커크 더글러스와 킴 노박이 서로 사랑하는 유부남, 유부녀로 나오는 ’불륜영화‘다. 원작 소설과 각본은 경찰소설 ’87분서(分署)‘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이 에반 헌터라는 필명으로 썼지만, 또 다른 저명한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대사를 맡았다. 그래선지 대사가 일품(“여자는 남자의 가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심장이에요. 그게 멈추면 대번에 알지요”--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즉각 안다며 더글러스가 노박에게 하는 말)인 이 영화를 본 김에 내쳐 비슷한 영화를 한 편 더 찾아서 봤다. ‘종착역(Stazione Termini 1953)’. 당대의 할리우드 톱스타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제니퍼 존스를 기용했지만 ‘네오리얼리즘의 귀재’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을 맡은 이탈리아 영화다. 이 역시 이탈리아에 여행 온 미국 가정주부가 현지 청년과 만나 사랑에 빠져 바람을 피운다는 ‘바람 영화’다.

‘만날 때는~’은 같은 초등학교 학부모(이 설정은 프랑스 로맨스영화의 전설 ‘남과 여’와 같지만 ‘남과 여’ 주인공들은 둘 다 홀로 된 남녀라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학부모들 간의 이상한 관계’는 그만큼 보편적인 걸지도 모르겠다)인 이웃집 남녀가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다 만나 눈이 맞은 뒤 금지된 사랑을 나눈다는 얘기이고, ‘종착역’은 연상의 유부녀와 젊은 미혼청년 간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시절에 만들어져서인지 두 영화 모두 외도하던 주인공들이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도덕적’ 결말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보면서 상대가 커크 더글러스나 몽고메리 클리프트 같은 멋지고 잘생긴 남자였다면, 킴 노박이나 제니퍼 존스처럼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여자였다면 나라도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컴컴한 극장에 앉아 불륜의 조마조마한 스릴감과 함께 스크린에 빠져들었을 그 옛날의 어른 관객들이 생각났다.

이 영화들을 ‘어른 영화’라고 한 것은 그러나 단순히 그것들이 불륜을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불륜은 본질적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불륜 그 자체보다도 불륜이라는 주제를 활용해서 아이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연륜을 가진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 신맛, 그리고 아이러니 따위를 느끼게 해준다.

요즘 ‘성인영화’라고 하면 포르노영화나 그보다는 수위가 덜하긴 해도 역시 성적(性的) 선정성이 넘치는 에로영화, 또는 일반영화 가운데 잔인함과 폭력성이 과도한 영화와 욕설 등 비속어가 난무하는 영화, 정치적으로 체제 파괴, 체제 전복적인 영화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내가 말하는 ‘어른 영화’는 그런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생을 어느 만큼 살아본 사람들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세상사의 희노애락과 삶의 깊은 이치, 혹은 그 반대로 사소하고 미묘한 기미(機微) 등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주는 그런 영화를 의미한다.

그렇게 볼 때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애들 영화’다. 인생에 대한 관조(觀照)나 통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미국식으로 R등급, 한국식으로 ‘19금’이라고 해 봐야 매우 잔인하거나 폭력적, 성적 수위가 높은 것일 뿐 내용이라든가 표현방식은 하나같이 애들 위주다. 경제력을 가지고 돈을 쓰는 게 주로 어른들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 돈을 펑펑 쓰는 영화의 주된 관객층이, 즉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게 10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이라서인지 모르겠다.

한번 찬찬히 새로 나온 영화들을 둘러보기 바란다. 아동 만화를 저본으로 한 ‘~맨’류의 슈퍼히어로물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나 열광할 법한 변신 로봇물을 필두로 이른바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들을 포함해 ‘트와일라잇’ 시리즈니 ‘헝거게임’이니 ‘메이즈 러너’ 따위 대다수 영화들이 어쩌면 그렇게 애들 취향, 아니 편향인지. 어른들이 볼만한, 어른을 위한 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하긴 옛날에도 애들 영화는 많았다. 고전적인 장르에 속하는 서부극만 해도 그렇다. ‘오케이 목장의 결투’나 ‘황야의 7인’ 같은 것들은 그 내용이나 영화가 흘러가는 방식에서 다분히 애들 취향이었다. 비록 주인공들은 어른이었지만. 어른 영화로서의 웨스턴은 ‘셰인’이나 ‘하이눈’ 정도일까. 또 첩보영화는 어떤가. 007 제임스 본드와 만능스파이 ‘플린트’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과는 딴판으로 아주 현실적인 스파이를 다뤄 클래식 반열에 올라선 마이클 케인의 ‘국제첩보국’조차 자신의 삶과 일, 이념 등에 관한 진정한 고민이나 회의 따위는 관심 밖인 데다 늘 당당하고 자신에 찬 영웅으로 그려지는 주인공이 나오는 애들 영화다. 리처드 버튼이 거친 삶에 찌들어 고뇌하면서 타의에 의해 끌려다니는 추레한 몰골의 스파이로 나온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1965)’나 돼야 어른 영화 소릴 들을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져 최근 들어서는 ‘좋은 어른 영화’가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밀회(Brief Encounter 1945)’부터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 1954)’ ‘여정(旅情 Summertime 1955)’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 ‘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 1970)’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1984)’까지 하나같이 글자 그대로 주옥같은 ‘어른 영화’들을 남긴 데이비드 린 같은 감독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들이 영화 흥행을 가름하는 주 고객층이라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감독들이 애들 영화만 찍어대도 괜찮을까. 적어도 ‘영화작가’ 꿈을 꾸는 이들이라면 수치스럽지 않을까.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