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장 된 장기미개발 공원 부지

입력 2015-10-04 23:34
김모(73·여)씨는 지난 5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김씨가 소유한 서울 홍은동의 백련산에 약 1만3000㎡(4000평)의 땅 중 일부를 사겠다는 전화였다. 시아버지가 1960년대 매입해 아들에게 물려준 이 땅은 김씨의 남편이 사망한 1996년 김씨 소유가 됐다. 작지 않은 크기여서 기쁠 만도 하지만, 김씨에겐 사실 이 땅이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가 이 땅을 도시공원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공원 외 용도로는 개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50여년 동안 그 누구도 김씨 땅을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 2020년 일괄 해제=공원 부지로 묶인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우선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1962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민의 요구에 따라 도시계획을 하면서 새로운 땅을 도시공원으로 지정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 땅을 공원으로 만드는 데에는 소홀했다.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면적은 1005㎢에 달하지만, 실제 공원으로 조성된 면적은 40.2%인 404㎢뿐이다.

이 때문에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땅 소유자들이 반발해왔다. 공원으로 조성하지도 않으면서 사유지를 공원 부지로 묶어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1999년 도시계획시설을 지정해 놓고 장기간 집행하지 않는 것은 토지의 사적 이용권을 제한한다며 기존 도시계획법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0년 7월 이전에 도시공원으로 지정됐어도 실제로 공원이 만들어지지 않은 장기(10년 이상) 미개발 공원의 경우 2020년 7월이면 도시공원 용도가 일괄 해제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면적만 512㎢에 달한다.

공원 부지를 사겠다며 김씨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도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공원 부지가 개발가능 용지로 풀리면 땅값이 2~3배는 뛸 것”이라며 “10억원짜리 공원 부지일 경우 자기자본 2억원에 융자 8억원으로 구입하면 수익률이 1000%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에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온 올해 초 거래가 크게 늘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홍철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 장기 미개발 공원 거래 실적은 매년 30회 안팎이었는데 올해는 9월까지 이미 30건에 달했다. 윤덕수 부동산광장 대표는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 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것은 ‘선수’들끼리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며 “최근 일반인들도 전문 변호사에게 공원 부지 매입을 상담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책 마련 시급하다=5년 뒤면 시민들은 휴식 공간인 공원을 잃고, 부동산 투자자만 큰 돈을 벌게 되는 것일까. 한국의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은 지난해 기준 8.6㎡로 영국(26.9㎡)의 3분의 1 수준이다. 공원을 늘릴 방법은 있다. 지자체가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를 공원으로 개발하면 된다. 문제는 지자체에 충분한 예산이 없다는 것. 국토교통부가 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총 43조원이 든다.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예산의 일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획재정부는 공원 조성은 지자체 소관이라며 예산 지원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장기 미개발 공원 대부분이 5년 후 개발가능 용지로 해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른 대안들도 강구되고 있다. 국토부는 민간 공원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 미개발 공원 부지 조성을 민간 기업에 맡기고, 부지의 30% 정도는 개발을 허용하되 나머지 70%는 기부채납(정부나 지자체에 무상으로 땅을 반납하는 것)을 하게 하는 방안이다. 또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미개발 도시공원 관련 토론회에서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신두섭 수석연구원은 일본 요코하마시의 사례를 참고해 ‘녹지세’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공원을 조성할 비용을 국민들에게서 세금으로 걷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행에 옮길 만큼 현실성 있는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