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문제가 ‘딜레마’에 빠졌다.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대 1로 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농어촌 지역구 살리기라는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면서 선거구 획정이 방향을 잃은 모습이다. 여기에다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며 출범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도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의석 확보를 위해 선거구를 기형적 모양으로 분할하는 것)은 물론이고 명백히 위헌인 ‘인구 편차 2.3대 1’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서다.
획정위는 4일 보도자료에서 “농어촌 지역을 배려하기 위해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게리맨더링 논란을 우려해 “분할 방안은 자칫 자의적인 선거구 획정이라는 문제 소지가 있는 만큼 허용한다 하더라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획정위는 또 “농어촌 지역 선거구 통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정 규모의 하한 인구수를 설정하고 그 2배수 내에서 상한 인구수를 산출한 뒤 이를 (선거구 획정에)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현행 246개 선거구 가운데 ‘적정 규모’의 선거구를 골라 ‘하한 인구’ 기준으로 정하고 그로부터 인구 편차 2대 1을 충족시키는 ‘상한 인구’를 정하는 방안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기존 선거구 인구 산정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된다.
하지만 이날 획정위가 제시한 두 가지 방안은 회의석상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획정위 내부에서는 “위원장의 월권이다” “합의되지 않은 방안을 획정위 명의로 제시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하는 방안은 속칭 게리맨더링으로, 이는 현행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높다. 한 획정위원은 “획정위가 선거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자치구·시·군 분할을 공정하게 해야 하는데 이를 공정하게 적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한 인구수 재설정 방안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두 차례 가량 제안 됐으나 의미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획정위의 이 같은 ‘무리수’를 두고 ‘사실상 정치권의 입김이 닿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 2일 획정위 회의에서는 일부 농어촌 지역을 배려하기 위해 ‘인구 편차를 2.3대 1’로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인구 편차 2대 1’이라는 헌재 결정에 배치되는 위헌적 주장이다. 획정위 관계자는 “한 획정위원이 인구 편차를 2.3대 1로 조절하자는 의견까지 내놨다”며 “위헌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 때문에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다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추천 획정위원이 이런 주장을 제시했으며 김대년 획정위원장도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획정위는 오는 13일로 예정된 선거구 획정 기준 제출 시한을 엄수하기 위해 조만간 임시 회의를 소집,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5일 오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 관련 방안을 논의한다. 회동 결과에 따라 논의가 급진전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한 정개특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인 획정위원장이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발언하는 등 획정위의 중립성이 훼손된 상태”라며 “13일까지 결론을 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딜레마 빠진 선거구 획정...위헌인 '인구편차 2.3대 1' 주장에 이어 '게리멘더링'까지...
입력 2015-10-04 17:33 수정 2015-10-04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