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눈치보기? 총선 지역구 숫자도 못 정한 게임룰” 13일 법정시한 못 지킬 가능성도

입력 2015-10-03 00:1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일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숫자 단일안을 확정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의 복잡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획정위가 지난달 24일 한차례 결론을 유보한 데 이어 또 다시 단일안 도출에 실패하면서 여야는 일단 시간을 벌게 됐지만 다음주 획정안이 결정되더라도 내년 '총선룰'로 최종 결정될 때까지는 숱한 고비를 넘겨야 할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총선에 임박할 때까지 진통을 겪었던 과거 전례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획정위는 이날 정치권으로부터 획정안 결정 연기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새누리당은 오는 8일로 결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도 이에 동의하는 기류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위원장 1명에 여당 추천 위원 4명, 야당 추천 위원 4명인 획정위 구성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에서 획정안 결정을 위한 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처럼 정치권이 결정 연기를 희망했던 것은 일단 획정안이 발표될 경우 추후 번복·수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국회가 독립기구로 획정위만 만들어놓고 획정 기준은 만들지 않은 채 획정안만 뒤늦게 수정하라고 할 경우 여론의 비판이 클 것이라는 고민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획정위가 결정을 미루면서 정치권은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이후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행 선거법에 따라 획정위는 내년 총선 6개월 전인 오는 13일까지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정개특위는 획정안에 위헌·위법적 요소가 있을 경우 1회에 한해 획정위에 획정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정작 위헌·위법을 가를 근거로서 획정 기준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행 선거법에는 선거구 획정의 대원칙만 있을 뿐이며, 구체적 기준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가 조만간 선거구 획정의 구체적 기준에 합의할 경우 정개특위에서는 한 차례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여야 모두 농어촌 지역 선거구가 대폭 줄어드는 데 대한 반발이 적지 않고, 권역별 선거구 증감에 있어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개특위가 수정을 요구할 경우 획정위는 수정을 요구받은 날로부터 10일 내에 획정안을 다시 마련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수정된 획정안은 정개특위에서 행정적 절차만을 밟은 뒤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되며, 의원들은 채택 가부(可不)만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여야 의원들의 반발 분위기를 고려하면 한 차례 수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만약 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획정안 수정 주체와 본회의 처리 절차 등에 대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으로, 획정위가 다시 안을 만들지, 국회가 직접 안을 만들지에 대해 법제처의 유권 해석까지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선거법은 내년 총선의 경우 선거일 5개월 전인 다음 달 13일까지 선거구 획정 절차를 모두 마치도록 규정했지만, 이들 변수를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심지어는 예비후보자 등록신청 시작 시점(12월 15일),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선거구 구역표 변경 시한(12월 31일)까지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는 과거에도 선거 직전까지 몰려서야 막판 졸속 타협으로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한 적이 적지 않다.

17대 총선 때는 2월 27일, 18대 총선 때는 2월 15일, 19대 총선은 2월 27일 등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켰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