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냐” 묻고는 총질… 美 소도시 대학서 총기난사 비극

입력 2015-10-02 17:18
미국 오리건 주 로즈버그의 움프콰 칼리지에서 1일(현지시각) 경찰관들이 학생, 교직원, 교수를 학교 밖으로 나가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날 오전 이 대학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15명이 숨지고 20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미국 오리건주 소도시 로즈버그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대학)에서 1일(현지시간) ‘묻지마 총격 사건’이 벌어져 10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올 들어 미국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다. 범인은 대학 근처에 살던 크리스 하퍼 머서(26)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머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치권이 총기규제를 방치하면서 ‘묻지마 살인’이 일상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기독교인이냐” 묻고는 총질=이날 오전 10시30분쯤(현지시간)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 권총 세 자루와 자동소총 한 자루로 무장한 머서가 총을 쏘면서 스나이더홀 강의실로 난입했다. 총 소리에 놀란 학생들은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 여학생은 “문을 닫아”라고 외치며 강의실을 뛰쳐나가다 팔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머서는 충격에 빠진 학생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운 뒤 ‘기독교인이냐’고 물은 다음 총격을 가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범행 대상을 찾으러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머서는 매우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다른 생존자는 전했다. 인근 강의실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마이크 매티오 교수는 총 소리를 듣는 순간 20여명의 학생들을 재빨리 뒷방으로 피신시켜 피해를 줄였다. 머서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10시47분쯤 사살됐다. 머서는 정신질환을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전날 밤 온라인 게시판에 “만약 북서부에 있다면 내일 학교에 가지 말라”는 익명의 글이 올라왔으나 범행을 예고한 글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는 로즈버그는 인구 2만2000여명의 작은 도시로 실업률이 높고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이다. 주민의 20%가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4인가족 2만4250달러, 약 2870만원) 이하의 소득을 신고했다. 이 지역의 실업률은 8.1%로 오리건주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한 때 목제업의 중심지였으나 벌목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와인 생산용 포도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엄프콰 칼리지 재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37세로 대부분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해 기술을 익히려고 등록한 만학도들이다. 와인제조, 간호학, 자동차수리 등이 인기 과목이다.

◇오바마, “‘묻지마 살인’, 일상이 돼버려”=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미국에서 일상이 돼버린 ‘묻지마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나라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무너지는 다리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왜 총기 규제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가”라고 개탄했다.

미국에서는 올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221일동안 210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거의 매일 한 건씩이다. 6월 17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신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7월 16일에는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현역 군인 5명이 무슬림 청년의 총격에 희생됐다. 같은 달 23일에는 루이지애나주의 한 극장에서 백인 남성이 총을 난사해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온라인 편집=신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