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곳에/나탈리 체르니셰바/재능교육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은 말총머리 아가씨가 시외버스를 탄다. 빌딩 숲, 꽉 막힌 차도를 빠져나가는 그 노란 버스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 다음 장에 펼쳐지는 한적한 전나무 숲이 시원하다. 전나무는 흑백의 붓질 결을 살렸다. 붓질의 획에서 버스가 휙휙 지나가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버스가 그녀를 내려준 곳에는 광활한 벌판에 작은 집 한 채가 멀리 보인다. 그곳은 어디일까. 집이 점점 가까워지며 아가씨는 그곳에서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 사람처럼 커진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달린 소박한 집이다. 문득 찾아온 낯선 방문객에 쭈글쭈글 할머니의 얼굴이 미소로 펴진다. 손녀라도 맞는 듯하다. 어릴 적 꼬물꼬물 기던 손녀는 사춘기를 넘기며 어느새 쑤욱 커버린다. 그래서 어깨보다 낮아진 할머니를 내려다보게 된다. 그림책은 그런 인생의 역전을 하늘만큼 커버린 손녀의 다리를 난장이처럼 붙잡고 얼굴을 부비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실감나게 표현한다. 그 때 할머니가 짓는 행복한 표정이라니.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 냄새 앞에서 손녀는 다시 예전처럼 작아진다. 그 사랑 앞에 기대에 응석을 부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다시 오니, 이렇게 작은 집이었나 싶었던 할머니집도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처럼 마술을 부리듯 커 보인다. 추석 연휴,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잠시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은 어른이고 싶지 않는, 지친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러시아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으로 글씨 없이 그림만으로 엮었다. 지난해 러시아 크록(KROK)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수상작을 책으로 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그림책] 다시 그곳에
입력 2015-10-01 15:50